얼마 전 시인으로 등단한 지인이 책 한 권을 건네줬다. 계룡산 인근의 한적한 곳에 한의원을 연 한의사의 책이었다. 서너 시간 만에 책을 다 읽었다. 그 한의사는 누구든지 잠깐이라도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거나 같은 공간에 있기만 해도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파장을 통해 그 사람의 내면이 어떤 상태인지 느끼고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가슴이 따뜻하고 마음이 편안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그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고 자신도 행복해진다는 한의사.
문제는 따뜻하고 평화로운 파장을 내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땅을 밑천 삼고 하늘과 자주 대면하며 바람에 몸을 내맡기며 사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한의원 근처에도 갈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만나는 사람 대부분은 평화롭지 못한 사람일 확률이 높을 수밖에.
나는 어떤 파장을 내보내는 사람일까. 그는 환자를 진맥해서 얻는 것보다 환자 몸에서 나오는 파장에 훨씬 더 깊고 풍부한 정보가 담겨 있어 치료에 더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사람마다 나오는 고유한 파장은 몸을 구성하는 세포에서 나오며, 더 세분화하면 세포를 구성하는 입자에서 나온다고 한다. 사람 몸의 세포에는 여태껏 살아오면서 겪고 느꼈던 모든 것이 오롯이 담겨 있다는 글을 읽고 나니 그가 더 궁금해졌다. 겉으로 드러난 증세나 통증이 발생한 곳에 대한 치료보다 근원적이면서 본질적인 치료가 더욱 중요하다는 그의 글에 이미 내 마음은 사포리에 가 있었다.
이미 두 차례나 다녀온 지인은 내가 가겠다면 여행 삼아 동행해주겠다고 했다. 추위가 잠시 주춤했던 2월 목요일 아침, 무궁화 열차를 탄 우리는 소풍 가는 아이의 마음이 됐다. 작은 역에 내리니 낮 12시가 훌쩍 지나있었다. 역 앞의 조그만 한식 뷔페식당이 있어 들어갔는데 음식이 소박하고 정갈했다.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반찬들만 고르고 골라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식당 주변을 둘러봤다. 한적하고 평화롭지만, 겨울이라 약간은 썰렁한 느낌이 드는 마을이었다. 택시를 타고 10여 분을 달려 내린 곳, 도저히 한의원이 있을 것 같지 않은 황량한 겨울 들판 어디쯤이었다. 성인 허리 높이쯤에 서 있던 가로로 쓰인 자그마한 한의원 간판은 그나마 양쪽으로 키 큰 갈대들이 늘어져 있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일 듯했다.
드디어 이상한 한의원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당 또한 겨울 절집 풍경을 축소해 놓은 듯했다. 겨울이라 마당은 푸릇한 기운도 없고 나지막한 석탑이 서 있어 조금은 황량한 모습이었다. 본채의 현관문을 열자 생활한복 차림의 그가 반가움 가득한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넓은 거실이 바로 진료실이었다. 현관 맞은편 벽 쪽에 인도의 구루로 보이는 사람의 사진이 기대져 있었고, 그 앞에 낮은 통나무 탁자가 놓여 있었다.
그와 우리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는 찻잔에 보이차를 따라 주었다. 보이차를 마시며 탁자 주변을 찬찬히 보니 십자가와 싱잉볼 등 여러 종교를 떠올리는 물건들과 꽤 많은 CD가 있었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찻잔이 비면 또 차를 따라주고 그렇게 그와 우리는 백두산, 인도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 중간에 잠깐씩 마당을 드나들던 그가 틀어준 정홍일 가수의 ‘그대는 어디에’는 평안한 듯 포장돼 감춰져 있던 내 심장을 뒤흔들었다.
내가 찾는 ‘그 무엇’이 저 멀리 창밖 너머로 보이는 산봉우리만 넘으면 있을 것 같다는 내 말에 그는 미운오리새끼 이야기를 했다. 백조를 보지 않았다면 영원히 미운오리로 살았을 백조. 백조를 보는 순간,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알게 된 백조 이야기에 투두둑 떨어진 눈물. 부모님 와병으로 발이 묶인 듯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마음을 그때 깨달았다. 그러고 그는 또 잠시 자리를 비우며 류시화 시인이 낭송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재생했다. 그날 바로 그 순간, 노래에 이어 그 시가 내 안에 갇혀 있던 감정의 조각들을 흔들어 깨웠나 보다.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순간순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내 감정을 읽어내던 그는 이상한 한의사가 분명했다.
대화한 지 2시간 가까이 돼서야 지인과 나는 침을 맞는 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등이 켜진 방엔 누운 부처님 얼굴 사진이 머리맡에 기대져 있었다. 한의사가 내 발을 잡고 기도하는 동안은 시간이 멈춘 듯했다. 주요 혈 자리에 침을 맞고 나도 모르게 부처님과 함께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누군가 침을 빼는 기척에 잠에서 깼다. 거실로 나오니 세 여인과 한의사의 대화가 한창이었다. 지인과 함께 나와 한의원 마당을 천천히 걸어 나와 주변을 잠깐 걸었다. 겨울 끄트머리지만 해 질 무렵이라 바람이 찼다. 기차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서성대는 우리를 큰 창을 통해 봤는지 한의사가 달려 나와 별채에 있으라며 안내했다. 우리는 따뜻한 별채 아랫목에서 큰 창으로 보이는 마당과 그 뒤에 이어진 편안한 산등성이 너머에서 다가올 봄을 느끼며 젊은 날의 꿈 이야기를 나눴다.
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르게 된 곳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시였다. 돌아보니 시를 쓰려고 두 번 시도한 적이 있었다. 대학 신입생 땐 시문학 동아리 남학생과의 연애를 걱정한 엄마에 의해 좌절됐고, 40대에 다시 등록한 시 수업은 아버지가 허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하면서 그만두게 됐다. 지금 돌아보니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열아홉 땐 그렇다 하더라도 40대의 두 번째 선택은 너무 바보 같았다. 아버지는 간병인을 고용한 상태였는데 왜 시 수업을 포기했을까. 효도에 대한 장녀의 강박이었을까. 아니면 매주 시를 써내야 하는 압박감 때문이었을까.
서울로 돌아온 뒤 바로 시 수업을 신청했다. 다시 열아홉으로 돌아간 듯 설레기 시작했다. 시를 쓰기는커녕 겨우 수업 신청을 했을 뿐인데도 그랬다. 내 안에 있던 오랜 꿈을 다시 꺼내게 해준 한의사, 그 이상한 한의사 덕에 변덕스러운 3월의 날씨에도 마냥 마음이 푸근하다.
시에 대한 내 마음이 짝사랑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쓴 첫 시. 다시 열아홉으로 돌아간 듯 설레는 마음만 가득하지만 첫술은 첫술일 뿐. 그래도 제자리를 맴돌다 첫 한 걸음을 내디딘 기분이라 봄날이 코앞에 온 듯하다.
짝사랑
Jasmine
시를 쓰고 싶어
쓰면 되잖아
사람들이 웃을까 봐 겁이 나
울리는 것보다는 낫잖아
난 왜 울리고 싶을까
그러니 못 쓰는 거야
머리 말고 마음을 써
울리겠다는 생각도
웃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모두 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냥 내게 좀
와 주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