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smine Apr 16. 2023

62. 길에서 만난 세상

―집을 나서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

집은 하나의 세상이다. 엄마의 자궁에서 나와 처음 공기를 호흡하고 부모 품에 안겨 집으로 온 아이에게 집은 그 자체로 ‘완벽한 세상’이다. 어린 시절 길을 잃어본 사람은 안다. 집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이 아이에겐 세상 전부를 잃는 일이란 것을. 타고난 길치인 나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기억이 생생한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꽤 여러 차례 길을 잃었다. 엄마, 아버지의 증언으로 들은 네 살 무렵의 이야기는 하도 들어서 마치 내 기억인지, 들은 이야기인지 헷갈릴 정도다.

     

젊은 엄마, 아버지가 부산에서 남의 집에 세 들어 살던 1960년대 말, 엄마가 이모네에 일이 생겨 두 살짜리 남동생을 업고 가면서 주인집 남매에게 날 맡기고 갔다. 둘 다 열다섯 살 안쪽이었던 남매는 부모가 없는 틈을 타 어른들이 아껴 타 먹는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당연히 커피는 두 잔이었을 터. 이때 네 살짜리의 불만이 삐져나왔다. “내 꺼는?” 조그만 아이가 너무도 당당히 자기 커피도 달라고 하니 남매는 마지못해 다른 잔을 가져와 이미 만든 두 잔에서 조금씩 따라 한 잔을 더 만들었다. 새로 가져온 잔의 커피양이 남매들보다 훨씬 적은 걸 알아차린 네 살짜리의 반항이 시작됐다. “엄마한테 갈 꼬야” 하며 신발을 신고 대문을 향해 가는 꼬맹이를 보고도 주인집 남매가 “조그만 게 가 봤자지. 길도 모르는데 어딜 가”하며 방치한 게 화근이었다. 대문을 발로 톡 차고 나간 아이는 5분, 10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도 없던 시절, 한참 뒤에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딸의 부재에 정신을 놔버릴 지경이 됐다. 주인집 남매는 부모에게 혼나 울고, 어른들은 나를 못 찾을까 봐 주인집, 셋집 할 것 없이 발칵 뒤집혔다. 다행히 경찰이던 이모부 덕에 밤을 넘기지 않고 동네에서 버스 두어 정거장 거리의 경찰서에서 보호 중인 나를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경찰서에 있는 동안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는 순경의 증언으로 엄마의 기억에서 내 머릿속으로 전해졌다. 혹시라도 길 잃은 아이가 겁에 질려 울까 봐 순경은 과자며 사탕을 내 앞에 늘어놓고 곧 엄마가 올 거라며 얼렀다고 한다. 다행히 울지는 않았는데 아이가 과자며 사탕을 먹지는 않고 빨간 스웨터 오른쪽, 왼쪽 주머니마다 볼록하게 채우더라는 것. 그 무렵의 나는 지금과는 달리 먹성이 아주 좋았다는데 엄마, 아빠 손잡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야 주머니에 든 걸 모두 꺼내놓고 하나씩 먹더라는 것. 그게 처음 완벽한 세상을 잃어본 경험이었다.    


해피엔딩이긴 했지만, 그때의 경험은 아주 깊게 무의식에 저장된 듯하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집을 못 찾아 길 위에서 저물녘까지 헤맸던 기억 탓인지 지금도 집 밖에서 저무는 해를 보면 서둘러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은 약간의 불안과 알 수 없는 처량함이 내 안 어딘가에서 올라오곤 한다. 발걸음을 재촉해 마침내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안도감이 나를 감싼다. 이처럼 안온하고 완벽한 세상이 문 하나만 열면 눈앞에 펼쳐지니 마술이 따로 없다.      

 

길치였던 아이가 직장인이 되고 한창 일에 재미를 붙였을 즈음, 초유의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만났다. 갑작스레 직장을 잃고 이것저것 배우며 다양한 시도를 하던 중 부산에선 일자리 찾기가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나고 자란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가까스로 직장을 구했다. 모든 게 낯선 서울살이였지만 처음 독립해 온전한 나만의 공간을 채우는 일은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7평 원룸에서 10평 원룸으로, 17평 아파트 전세에서 같은 평수 아파트를 장만하고 다시 집을 넓혀가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지만 그 이상의 만족을 내게 안겨주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이제 진짜 어른이 됐나 보다 했을 때 찾아온 ‘나’에 대한 의문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왜 지금 행복하지 않나?’ ‘어느 집 딸, 어느 회사 직원’ 말고 나를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은 무엇인가? 내 어깨에 지워진 ‘역할’에 대한 부담감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에 휩싸였을 무렵 인도를 떠올렸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가 아닌 혼자 떠나는 첫 여행지로 택한 인도는 떠나는 날까지 기대와 두려움의 엎치락뒤치락으로 나를 요동치게 했다.      


그렇게 두려움을 안고 떠난 인도에서 여행 친구 ‘로마’를 만났다. 로마가 있는 식탁은 언제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어른이 된 뒤에도 저렇게 웃으며 살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 그녀와 함께 웃는 사이 마음이, 삶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경험을 했다. 그때의 경험 덕에 한국에 돌아온 뒤 로마와 함께 배낭여행의 맛에 빠졌다. 사는 지역도, 나이대도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경험 또한 혼자 길을 찾아 나섰기에 가능했다.      


한번은 글쓰기 수업인 줄 착각하고 수강하게 된 어떤 수업에서는 당시에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내 안에서 강렬히 소망하던 마음공부의 세계로 이끌어준 친구를 만났다. 여고 시절에 죽음의 고비를 한 번 넘긴 그녀는 나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삶에 대한 겸손을 지닌 어른이었다.      


집을 뒤로하고 길을 나서지 않았다면 닫힌 공간이었을 집이, 집 밖으로 난 많은 길을 걷고 또 걸었던 덕분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길에서 만난 인연들, 별 볼 일 없을 것 같던 내 인생에 지혜를 한 줌씩 쥐여줬던 인연들이 없었다면 어쩌면 나는 작은 집 안에 갇혀 날 줄 모르는 새처럼 지냈을지도 모른다.      


몇 년간 이어진 코로나로 낯선 사람과 대면하는 즐거움을 잊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중년이 되어 돌아보니 성장의 기회도, 나를 성장시킨 친구도 모두 길 위에 있었다. 조금만 용기를 내 길을 찾아가다 보면 어디쯤에서는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을 먼저 걸어간 누군가와 만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오늘은 한 작가의 수업을 들으러 집을 나선다. 그가 어떤 낯선 이야기로 나를 설레게 할지 기대되는 주말 아침이다.

작가의 이전글 61. 엄마에게서 내게로 온 소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