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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Dec 20. 2020

8. 나를 살리는 '불안'이라는 감정

'불안'의 수면 아래를 바라볼 수 있는 힘

스토리텔링 수업에서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5단계 욕구 이론을 처음 배웠다. 1단계 생리적 욕구, 2단계 안정·안전의 욕구, 3단계 사랑·소속의 욕구, 4단계 존중(인정) 욕구, 5단계 자아실현의 욕구. 그 당시만 해도 보다 낮은 차원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것보다 높은 차원의 욕구는 행동의 동기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배웠다. 예를 들면 생리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은 생리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전력을 다하며, 그보다 상위에 있는 안정·안전의 욕구 이상은 행동의 동기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일단 충족된 욕구는 더 이상 행동의 동기부여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몇 년 사이 달라진 건 이 욕구가 순서대로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1991년 방영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 나온 철조망 키스 장면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감시가 삼엄한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곧 다른 지역으로 전출돼 가는 대치(최재성 분)가 일본군 위안부 여옥(채시라 분)에게 ‘살아 있어’라고 작별인사를 하며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다. 총 든 일본군에게 들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2단계 안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상황에서 3단계 사랑의 욕구를 갈구하는 걸 보면 매슬로의 이론과 달리 욕구가 꼭 순차적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는 게 분명해 보인다. 요즘엔 그게 더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 같은 발달과정을 거치며 가장 높은 단계까지 가지는 않는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2단계에서 멈추기도 하고, 3단계 혹은 4단계에서 멈추기도 한다. 평생 돈을 모으기만 하고, 자신을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뜻깊게 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 일생을 남의 집 담을 넘는 재주만 부리다 교도소를 집으로 삼는 사람은 1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다. 또한 어릴 땐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 형제자매와 경쟁하고, 성인이 돼서는 이성이나 배우자에게 사랑받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은 3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내가 2단계인 안정·안전의 욕구는 아주 강하지만 3단계 사랑·소속의 욕구는 약하고, 4단계 존중(인정) 욕구와 5단계 자아실현의 욕구는 매우 강하다는 걸 알았다.      


과연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있었던 걸까. 매슬로 이론 하나를 배웠을 뿐인데 막연하게 알던 ‘나’를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이 신기하기만 했다. 한 사람의 욕구 그래프, 즉 어떤 욕구가 강한지만 알아도 그 사람의 행동 패턴을 유추할 수 있다니 마치 미로에서 지도를 손에 쥔 듯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내가 안전의 욕구가 강한 사람이란 걸 알아차리면서 그 동력이 다름 아닌 ‘불안’이라는 것까지 알게 된 건 큰 수확이었다. ‘불안’을 없애버려야 할 몹쓸 감정으로 여겨왔던 내게 매슬로 이론은 은혜로운 지식이었다. 내 안에 ‘불안’이 상주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허약한 사람으로 치부한 나 자신이 안쓰럽기도 하고, 나 자신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불안’은 나를 지켜준 수호신 같은 감정이었다. 밤길에 대한 불안은 밤드리 노니는 일을 피하게 했고, 술 취한 남성들의 성적 일탈에 대한 불안은 술자리에 오래 남아 있는 걸 삼가도록 했다. 그 ‘불안’이 나의 안전에 대한 욕구를 강화했고, 거기에 맞춰 내 행동 패턴이 정해졌다. 맨 처음 서울에 올라와 집을 구할 때도 그 어떤 조건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던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건 내 세포에 새겨진 DNA 같은 것이었다.     


지난해 5월 여행경보 발령 지역인 부르키나파소에서 납치됐다가 구출된 40대 한국 여성에 대한 내용이 뉴스에 나왔다. 그녀는 배낭 하나 메고 수개월 동안 위험 지역을 다녔다고 한다. 그녀에게는 ‘불안’이라는 경고등보다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더 강력하게 작동했을 것이다. 그러니 안전하고 뻔한 여행지보다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여행이 그녀에게는 훨씬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혼자서 배낭여행을, 그것도 위험지역으로만 다닌 그녀는 안전에 대한 욕구나 사랑·소속의 욕구보다 자아실현의 욕구가 더 강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세상에는 개인의 노력으로 피할 수 없는 위험도 있지만, 조금만 조심하면 피할 수 있는 위험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 어떤 도전도 내 몸과 영혼의 안전보다 가치로울 수 없다고 믿는 존재였다.     


이제 나는 ‘불안’을 몹쓸 감정으로 비하하지 않는다. 기쁨, 사랑, 즐거움의 감정만 있다면 그건 밤은 없고 낮만 있는 세상 같을 것이다. 때로는 분노가 어떤 일을 추진하는 동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슬픔이 나를 인간적인 존재로서 사람 구실을 하게도 한다. 이렇듯 긍정적 감정이 100% 좋기만 한 것도, 부정적 감정이 100%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님을 아는 것, 그게 바로 자아를 찾아가는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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