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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Apr 22. 2024

영국 길냥이 양아치 2

전지적 양아치 시점

난 참치팩이 간절히 먹고 싶을 땐 이렇게 불쌍한 척. 간절한 눈빛으로 긴 머리를 바라본다.

이게 통하면 마음 약한 긴 머리는 어김없이 내게 참치팩을 꺼내 준다.

자, 나를 한번 자세히 관찰해 보시라.

긴 머리털 인간이 종종 내 코앞까지 다가와 나를 관찰하거나

내 정수리를 섬세하게 쓰다듬을 때가 종종 있다.

오늘도 부드럽게 내 코끝부터 시작해 목덜미까지 쓸어 넘기며 한마디 한다.

"호동아, 넌 왜 덧신 한쪽을 반쯤 걸쳤니? 발가락 불편하지 않아?

그리고 말이야, 흰 셔츠를 입었으면 나비넥타이 정도는 매 줘야 하는 거 아니니?"

나는 내가 덧신을 신었는지, 셔츠를 입었는지도 모르고 평생 살아왔는데,

그 말을 듣고서 내 앞다리를 내려다보니, 왼쪽발에 하얀 덧신이 3분의 1이 벗겨져 있다.

목이 짧아 셔츠는 안 보인다. 목을 좀 늘려 꼬아 보면 보이려나? 거울을 좀 가져오든지...,

'근데 뭐 어쩌라고, 넥타이를 매 주던지, 아~그건 됐고 참치팩 하나 주시지.'

긴 머리는 참치 달라는 내 간절한 눈빛을 보고도 또 못 본체 한다.

내 뒷덜미를 몇 번 더 쓰다듬고는 휑하니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아니, 아니, 이게 뭔 짓이야! 이건 아니지, 만졌으면 줄건 줘야지.'

'에잇, 이거나 먹어라~~~ 메롱~~~'

태생이 양아치인지라 가끔 예전 버릇이 나도 모르게 이렇게 나온다.

'이것도 한방 먹어라~~'

메롱에다 냥펀치까지 날려봤지만, 신경도 안 쓴다는 듯 집안으로 들어간 긴 머리는 곧바로 들이대기 물건을 손에 들고 내게로 다가온다. 그 물건을 두 손으로 잡고는 내게 마구마구 들이 대기 시작한다.

처음   물건속에서  나를 본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긴머리가  물건으로  마술을 부려 우리 길냥이들을  축소해 그 속에 가두는  알았다.

그날 긴 머리가 그 물건안에 있는 나와 닮은 놈을 보여 던 그 순간,  난 그때 정말 온몸이 털이 쭈삣 거리는 걸 애써 가라앉히고 태연한 척하며 그것들을 들여다봤다. 그때 긴 머리가 말했다.

"호동아 이게 너야~~~봐봐~~ 이게 너라고~~"

'아니, 이게 나라고..., 이런 모습을 왜 거기다 담아둬? 지워~지우라고!'

지워라고 외치고 또 외쳐댔지만, 인간인 긴 머리가  내 말을 알아들을 리 없다.

가끔 긴 머리는 그 물건을 손에 들고 뭐라 중얼중얼거리기도 하고, 앞, 뒤뜰에 있는 꽃들에게도 들이대는 걸 보고 그게 인간들이 무척 소중히 여기는 소통도구라는 알게 됐다. 지금은 그것을 내게 들이대는 순간 내 모습이 하나 둘 그 물건 속에 모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가끔 내 영역을 벗어나 하루에 한두 번씩 산책을 할 때 나와 자주 마주치는 인간이 하나 있다. 그는 길을 걸을 때나 벤치에 앉아있거나, 가끔 얼굴이 쭈굴쭈굴하고 긴 목줄을 채운 강아지를 끌고 다닐 때도 시종일관 저 물건만 보고 다닌다. 끌고 가던 쭈글이가 길거리에 뚱을 싸도, 다른 인간들은 검은 봉지에 그걸 주워 담는데, 그놈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 가끔 물건을 보고 미친놈처럼 헤죽거리며 웃기도 하고,  양아치인 내가 듣기에도 거북한 욕도 하는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인간이다.

하루는 나도 나름 고민이 많아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걷다 그 빡빡이랑 마주친 적이 있다. 나는 빡빡이를 봤고 빡빡이는 들이대기 물건에 빠져 당연히 날 못 봤다. 난 유연하게 코끼리 앞다리 만한 그의 다리를 피했지만 내 고운 털이 그만 그 코끼리 다리를 살짝 스쳤던 거 같다. 그 순간 그놈은 세상의 모든 욕들을 해대며 지랄 발광을 했다. 놀란 난 잽싸게 건넛집 울타리 사이로 들어가 그놈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놈은 코끼리 다리로 헛발질을  하며  태어나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험한 욕을 한참동안 하고는 골목을 빠져나갔다.

난 그런 그놈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한마디 했다.

"빡빡이 이놈~~~ 네가 앞을 보고 걸었어야지, 누구 탓을 하는거냐옹!

그 들이대기만 보고 걸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다 빵빵이랑 부딪쳐도 그렇게 욕만 할거냐옹!"

어이도 없고 황당하기도 했다. 비단 저놈만 그러는 건 아닌 일이지만...,

인간들은 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욕이나 폭력이 먼저 앞서는지 모르겠다.

일이 있고, 그놈 냄새가 바람결에 스쳐 오기만 해도 왔던 길을 되돌아 뒷산 길고양이들만 다닐 있는 작은 오솔길로 향한다.

그런 놈은 안 보고, 멀리하는 게 가장 안전하고 마음이 편하다,


'그건 그렇고 긴 머리 인간, '

'아, 참치팩은 정말 안줄거냐옹? 그렇게 날 만지고, 들이대면서 참치를 안 준다고? '


↘︎ 생각하는 사람 코스프레 중인 '생각하는 척하는 호동이'


'긴 머리, 누가 사진 찍으랬어~? 참치라도 주고 찍어야지..., '

'정말 안 주겠다고?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내 마지막 수 들어간다 냐옹~'

'난 줄 때까지 여기 이렇게 누워있을 거다.

긴 머리!! 너 오늘 가드닝 못한다.

날 밟고 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게나~'

"야! 양아지, 저리 비키지 못해? 이게 뭔 짓이야? 너 아침밥 먹은 지 몇 분이나 됐다고 이래?

 참치팩 달라고 이러는 거지? "

'ㅎㅎㅎ, 그래 난 그거 줄때때까지 이러고 있을 거다냥~'

정말 다행인 , 오늘 덩치 큰 짧은 머리 인간이 이 집에 없다는 거다.

그러기에 이렇게 좀 있으면 마음 약한 긴 머리가 참치팩 한 봉지를 꺼내 올 거다.

'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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