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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은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자신을 싫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른 누군가의 입을 통해 직접 듣는 것은 달랐다. 그것도 자신의 동생이... 더구나 정작 그런 얘기를 경수조차 본인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지 못했다.
“혹시 동생이 날 왜 싫어했는지는 얘기했었어?” 경수의 얘기가 끝나고 정석이 꺼낸 첫마디였다. 마치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동생이 본인을 미워하고 있었단 사실보단 왜 본인을 미워했는지가 정석에겐 더 중요했다. 애초에 경수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 또한 그것 때문이었으니까. 미현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정민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너 형하고 얘긴 하니?”
“뭐... 굳이?”
“남들은 형제끼리 이거저거 많이도 하드만. 하다못해 술이라도 같이 마시던가”
“불편해. 재미도 없고”
엄마인 미현의 앞에서도 형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던 정민이었다. 미현은 그런 정민이 답답하게만 느껴졌었다. 물론 형제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정석에게도 못마땅하긴 매한가지였다. 그 누구도 먼저 관계를 개선시키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자식들이 다시 친하게 지내길 원했지만 그들이 왜 멀어졌는지에 대해선 본인조차 잘 알지 못했었다는 사실을.
“혹시 말해줄 수 있어요?” 미현도 정석과 같은 질문을 경수에게 물었다.
“넌 형이 왜 싫은 거냐?” 같은 질문을 경수도 한 적이 있었다.
“넌 아빠가 왜 싫은데?”
“나?... 뭐 이유라면 수도 없이 댈 수 있긴 한데”
“뭔데”
경수는 한참을 고민했다. 스쳐지나가는 기억은 많았지만 이를 일일이 모두 나열할 수는 없겠다 생각했다.
“그 양반은... 공격적이야”
“공격적인 건 뭐야”
“폭력적인거보단 좀 약한 거라고 해야하나. 막 엄청 폭력적인건 아닌데 그렇다고 폭력적이지 않은 건 또 아닌”
“뭔소리야 그게”
“음... 술 취해서 집 들어오면 막 집안을 다 부셔. 근데 가족을 패진 않아”
“그게 폭력적인 거 아니야?”
“그런가? 또 엄마한테 막말하고 시도 때도 없이 화내고. 그 지랄할 때가 제일 꼴보기 싫지”
“충분히 합리적이네”
“그래서 넌 형이 왜 싫은데?”
“나도 잘 모르겠어. 이유가 있었던 거 같긴 한데, 왠지 그거 때문에 형 싫어하고, 형하고 말도 안 섞으려고 하고, 그렇다고 얘기하면... 뭐 그런 거 때문에 형하고 그러냐 라면서 쪼잔한 놈 소리 들을까봐. 그래서 나도 잊어 먹은 거 같아. 분명 형이 나쁜 놈인데, 이유를 생각하려하면 괜히 내가 나쁜 놈 같거든”
“야 술이나 더 마셔” 경수는 대화 주제를 돌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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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은 업무에 조차 집중할 수 없었다.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혹은 다른 이유가 없진 않았는지 그 생각뿐이었다. 어린 시절이긴 했지만 분명 사이가 좋았던 시기가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서로 간의 대화가 부담스러워졌고 그렇게 점차 멀어졌다. 사소한 말장난이 줄었고, 근황을 묻는 게 줄었고, 안부를 묻는 게 줄었다. 그렇게 직접적인 대화가 사라져갔고 그 이후엔 자연스레 전화나 메시지조차 줄어들었으며 그렇게 아무런 연락조차 주고받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정석의 신경은 온통 정민에게 쏠려있었다.
“팀장님?” 현진의 부름이 정석을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예? 아 현진씨”
“무슨 생각을 그리 하세요?”
“아냐 아무것도. 무슨 일이에요?”
“저희 홍보 기획안, 클라이언트 측에서도 최종 컨펌 해줬어요. 팀장님 메일도 참조 돼있을 거예요”
“네, 고생했어요. 그럼 큰 건도 하나 끝냈는데 오늘 우리 팀 일찍 퇴근할까요?”
정석의 말에 팀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그래도 돼요? 게임 출시 얼마 안 남았는데...”
“뭐 당장 지금 출시할 것도 아니고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내가 대표님한테 말해볼게요. 다른 사람들도 고생 했어요”
“팀장님 그럼 회식은 안 하십니까?” 다른 직원이 마치 회식을 하고 싶다는 듯 물어봤다.
“일찍 퇴근하는데 회식은 무슨... 내가 싫어. 괜히 법카로 맛있는 거 먹으려 하지마 넌 그게 보여.” 직원은 머쓱한 듯 웃는다. 하지만 무안해하진 않았다. 정석의 말이 면박이 아닌 농담이란 것을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다. 정석의 커리어는 실패를 모르는 것만 같았다. 회사를 나선 정석은 곧바로 경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경수야 바빠?”
“아니 뭐 오디션 대본보고 있긴 한데 그렇게 바쁘진 않아 왜?”
“정민이 보러 안 갈래?”
“어?”
“너 아직 정민이 보러 못 갔잖아. 지금 보러 가자”
말은 그랬지만, 실은 정석이 정민을 보러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왠지 경수와 함께 가야할 것만 같았다. 혼자서는 도저히 본인이 찾고자 했던 답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기에.
“알았어. 지금?”
“어. 너 있는 데 문자로 알려줘. 지금 갈게”
전화를 끊은 경수는 자신의 한심함과 함께 부끄러움을 느꼈다. 장례식에 함께 하지 못한 자신이, 정민이가 있는 곳을 단 한 번도 찾지 않은 자신이 무슨 낯으로, 친구랍시며 정민의 가족 앞에 나타나 그런 얘기들을 지껄였다는 사실이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가봐야겠단 생각조차 못한 자신이 창피했다. 그러는 한편 먼저 제안해준 정석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정석과 경수는 납골당의 조그만 공간 안에 놓인 정민을 함께 마주했다. 둘은 한참을 말없이 정민의 납골함과 그의 사진을 바라봤다. 먼저 입을 뗀 건 경수였다.
“진작 왔어야 했는데...” 차마 미안하단 말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사과를 정민에게 해야 할지 정석에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어딘지도 몰랐으면서 어떻게 와” 경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정석이 달래주었다.
“담배 펴?” 정석이 물었다.
“지금은 끊었지”
“잠깐 있어. 피고 올게”
정석이 담배를 다 피었을 때쯤, 경수도 뒤따라 나왔다.
“왜 나왔어. 들어가려고 했는데”
“뭐... 계속 있기가 뭐해서... 생각보다 어색해서”
“하긴 너도 못 본지 꽤 된 거니까... 하물며 형인 나도 그렇더라. 슬프긴 한데 그렇다고 막 절절하게 슬프지도 않더라. 살아있을 때 감정이 죽어서까지 가는 거지... 난 아직 걔가 멀게 느껴지고 걘 아직도 날 미워하는 거고, 넌 오랜만에 본 거라 그냥 잠깐 어색해 하는 거고”
정석은 그 말과 함께 건물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정민의 납골함을 바라보았다. 경수도 그의 시선을 따랐다.
“형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물어봐”
“형은 왜 내가 한 제안을 받아들인 거야? 사실 어떻게 보면 나도 형만큼이나 정민이 못본지 오래됐고, 장례식에 찾아온 사람 중에 나보다 더 정민이하고 친한 사람 많았을 거고 하다못해 민혁이가 더 잘 알았을 거 같은데”
“글쎄... 걔네는 이런 이상한 부탁 안했으니까?”
“...”
“내가 막 갑자기 동생 친구 붙잡고 내 동생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 했냐, 나를 별로 안 좋아했던 거 같은데 왜 그런지 알고 있냐? 이렇게 묻는 것도 웃길 거 같지 않아?”
경수는 가벼운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냥 궁금했어. 너라면 알려줄 거 같았거든”
“...미안해”
“사과를 왜해. 모르는 걸 어떻게 알려줘. 그러는 넌? 너희 아버지하고 정말 나하고 비교해보고 싶었어?”
“아니 그렇다기 보단... 내가 괜한 걸로 아빠를 별로 안 좋아하나 싶기도 하고, 다른 사람은 자기 가족을 뭐 땜에 싫어하나 궁금하기도 했고, 처음 형한테 부탁할 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런 거 같아. 어쩌면 형하고 똑같은 이유일지도 모르겠네”
“넌 아버지가 왜 싫은데?”
경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때 정민에게 했던 똑같은 대답을 하자니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것 같았다. 그땐 분명하던 아버지의 폭력성이란 것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경수는 그때처럼,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싶어 했다.
“예전엔 명확한 이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거 때문인 게 맞는지도 모르겠어. 이제 막 남들한테 말하기엔 괜히 내 얼굴에 침 뱉는 거 같기도 하고”
“그럼 아버지하곤 자주 만나?”
“아직 같이 살아”
“나와서 따로 살 생각은 안했어?”
“그런 생각도 안 한건 아냐. 밉긴 한데 또 같이 못 살 정도로 얼굴만 보면 화가 끓어오르고 숨이 못 쉬어지고 이럴 정도는 아니니까. 그 정도의 잘못을 했던 사람도 아닌 것 같고. 뭐 뭐든 일을 해서 독립할 수도 있었겠지. 근데 또 괜히 배우 하겠답시고 핑계나 계속 되면서 빌붙고 싶어 하는 거일지도 모르겠어. 그냥 편하고 싶은 거지. 위선적이라고 해야 되나. 나도 내가 뭔 소리 하는지 모르겠다”
정석은 대답 없이 경수의 말을 계속해서 들어주었다.
“그냥... 미워하기로 마음먹은 거고 그래서 계속 미워하는 거 같아”
“그러면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으면 되는 거 아냐?”
“가끔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닌데 그럴 때마다 내가 싫어하는 모습들이 보이니까...”
정석은 경수의 태도에 약간의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면 말을 해. 이것 때문에 내가 싫다. 가족이라도 말 안하면 몰라”
“많이들 그러더라. 가족이라도 말을 해야 한다고. 근데 가족이라 말을 안 하는 거야. 가족이라 말을 해도 안 바뀔 걸 알거든. 괜히 말해봤자 감정만 더 상할 텐데 그냥 말 안하고 조용히 지내는 게 낫지. 어차피 말 안하면 내가 이렇게까지 싫어하는지 모를 거 아냐”
“...알아...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눈치란 게 있어. 심지어 가족인데 그걸... 아는데 뭐 때문에 쟤가 날 싫어하나, 이런 생각 한다고”
“...”
“기회 있을 때 아버지한테 말해”
“형도 못 물어봤잖아. 궁금했으면 물어봤으면 되는 거 아냐? 나는 아예 말하고 싶지도 않아”
“그래... 미안하다... 그냥 너는 나처럼은 안됐으면 좋겠어서...”
둘은 더 말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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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은 회사를 출근 하는 내내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전날 있었던 경수와의 작은 마찰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시선은 운전대 너머 정면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의 생각은 다른 곳에 머물러 있었다. 내가 괜한 말을 한 것일까. 아니 경수 그 어린놈은 아직도 철이 덜 들었다. 뒤늦어서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는 것은 아니었을까. 온갖 생각이 정석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날따라 평소 한 번에 잘되던 주차도 잘 되지 않았다. 정석은 차를 대기 위해 여러 번 앞뒤로 왔다갔다 하기를 반복했다. 차를 주차하고 내렸지만 그럼에도 주차선과 비뚤하게 놓여있자 정석은 작은 소리로 욕설이 섞인 짜증을 내뱉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정석은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의 표정을 정리하기 위해 애썼다. 누가 봐도 짜증이 한가득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정석은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한 뒤 내렸다. 정석은 사무실로 들어서며 다른 직원들에게 억지웃음을 지어보이며 인사했다. 정석이 자리에 앉자 정석팀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던 수영이 정석에게 다가왔다. 수영의 표정도 정석의 표정처럼 좋지만은 못했다.
“저 팀장님”
“어 수영씨. 무슨 일 있어요?”
정석은 이번에도 억지로 표정을 풀어보이고 대답했다.
“제가 잠시 기사 훑어보고 있었는데 이거 보셔야 할 거 같아서”
수영은 정석에게 본인의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무슨 기사인데...”
기사를 확인한 정석은 본인의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스마트폰 화면의 스크롤을 빠르게 내리던 정석은 본능적으로 페이지의 맨 위, 기사가 올라온 시간을 확인했다.
‘ㅇㅇ사 출시 예정 신작 게임 ㅁㅁㅁ 표절의혹 – 17시 46분’
정석은 위기감에 휩싸였다. 자칫 잘못하다간 그가 목표로 한 이직이 물 건너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공포가 되어 다가왔다.
“팀장님 어떻게 할까요”
“어...어... 일단 팀원들 다 회의실에 모여 달라고 해줘요. 아직 출근 못한 사람 있으면 전화해서 좀 빨리 와달라고 해주고”
정석은 의자를 뒤로 젖히고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다시 한 번 욕설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