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유튜브 콘텐츠를 둘러보다가 진도아리랑을 열창하는 할머니의 영상을 보았다.
인상이 인자해 보이는 할머니는 장구를 치며 진도아리랑을 불렀다. 할머니 주변으로 손녀 손자들, 동네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흥겹게 춤을 췄다. 일어나 춤을 추는 할머니들은 손바닥으로 들고 온 양동이를 퉁퉁 치며 박자를 맞추었다.
95년도쯤에 촬영된 영상이라 화질이 좋진 않았지만 영상에 나오는 할머니들과 아이들은 화질이 무색할 만큼 생동감이 흘러넘쳤다.
진도아리랑을 열창하던 인자한 인상의 할머니가 인간문화재 조공례 명창이라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았다.
조공례 명창은 진도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곳에서 소리를 하며 살았다. 부친도 동네에서 이름난 소리꾼으로 소리판이 벌어지면 어김없이 선소리꾼으로 활약을 했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인해 조공례 명창도 어릴 적부터 소리를 흥얼거리며 자랐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는 것을 피하고자 열일곱이라는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갔는데 남편은 북해도로 징용을 갔다가 다른 여인을 데리고 돌아왔다. 시집살이까지 혹독해서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까지 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힘이 되어준 것은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흥얼거리던 소리였다.
그렇게 그녀에게 위안이 되어준 소리는 그녀를 명창의 길로 이끌었다.
1971년 전국민속경연 대회에 나가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1976년에 중요무형문화제 제51호로 지정되었다. 어릴 적부터 그녀에게 닥친 시련이 그녀의 내면을 더욱 단단하게 했고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소리로 이어졌다.
진도아리랑은 구전 과정에서 2500여 개가 넘는 가사가 민초들의 애환을 담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 수많은 애환의 감정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도 애환을 마음 깊이 간직한 사람이지 않겠는가! 깊은 애환을 소리로 풀어냄으로써 민초들의 한도 민들레 씨앗이 되어 허공으로 사라져 간다.
조공례 명창의 살아온 궤적들을 찾아보고 나니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를 내는 그의 얼굴에 깊게 팬 주름과 검게 탄 피부가 더욱 정겹고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한 밤중 내 방에선 오랫동안 그녀의 진도아리랑이 구성지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