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좋은 글은 메모에서 시작된다

- 좋을 글을 쓰기 위해서는(2)

by 강진




어느 해 까치들이 둥지를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관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희집 아래층 에어컨 실외기 위에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한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처음엔 실외기 위에 나뭇가지 몇 개가 흩어져 있었어요. 그게 까치들이 물어놨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우연히 까치 한 마리가 나뭇가지를 물고 그 위에 놓는 걸 목격하고 나서 둥지를 짓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둥지를 짓는 초반엔 나뭇가지 위에 다른 나뭇가지를 무작정 올려놓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게 둥지가 될까, 의구심이 들만큼 엉성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내려다봤더니 둥근 외벽이 만들어져 있었어요. 그때부터는 나뭇가지 배열도 제법 규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둥지 만드는 것에도 가속도가 붙어서 매일매일이 다릅니다. 새끼를 낳기 직전에 나뭇잎이나 헝겊조각이나 비닐 같은 것으로 둥지를 채우더군요.




글 쓰는 사람에게 메모는 까치들이 물어나르는 나뭇가지 같은 것입니다. 책상 앞에 앉았다고 글이 바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고 글의 실마리가 있어야하는데 그때 필요한 것이 메모입니다. 하나의 단어, 한 문장, 어떤 이미지, 포착된 장면… 이런 것들이 모두 글의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메모는 스쳐서 지나가 버릴 수도 있는 기억의 편린을 되살려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상상의 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모든 메모가 글이 되는 건 아닙니다. 물어온 모든 나뭇가지가 둥지를 만들 때 사용되는 건 아니듯이 말입니다.

그래도 글감은 메모 속에 있습니다. 수집해 놓은 메모에 살을 붙이고 또다른 메모를 가져오고 하는 작업은 책상 앞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메모와 저 메모가 우연히 연결되어 기막힌 글이 되기도 합니다. 꾸준하게 글을 쓰려면 메모하는 습관을 메모는 몸에 베게 해야 합니다.



습관으로 만들려면 메모의 방법은 익숙할수록, 쉬울수록 좋습니다. 메모할 것들은 아주 짧은 순간에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순발력이 필요합니다. 언제 어디서 좋은 문장이나 좋은 생각이 떠오를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의 대화 중에 보석같은 글감이 튕겨져 나올수도 있고, 유튜브 내용을 메모하고 싶을 수도 있고, 전철 안 광고판의 카피를 메모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메모의 순간’이란 건 예측할 수 없습니다.




스마트폰은 늘 가지고 다니니까 스마트폰 메모장에 우선 적고 나중에 차분히 정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읽었던 기사나 영상 전체를 저장하고 싶다면 URL을 메모장에 붙여넣기하면 되겠지요. 메모장에 쓴 내용은 다시 분류해서 키워드나 검색 가능한 앱에 저장하면 됩니다. 글로 쓰는 메모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음성 메모도 괜찮습니다. 음성파일을 글자로 변환해주는 앱으로 옮기면 글자로 전환해 주기 때문에 편합니다. 어떤 방법이든 글쓴이가 손쉽게 사용할 수 있고, 분류되어 있어서 필요할 때 찾아서 활용할 수 있으면 됩니다. 글을 꾸준히 쓰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먼저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독자와 함께 걸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