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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써라

- 어떻게 쓸 것인가(3)

by 강진


알라딘 중고서점이나 예스24 중고서점을 들린 적이 있으십니까?

언제부턴가 좀 시들해졌습니다만 예전엔 일 주일에 한번쯤은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습니다. 사고 싶은 책을 싸게 살 수도 있고 절판된 책이나 CD를 득템할 기회가 있어서 심심할 때 찾곤했죠.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문학동네의 세계문학시리즈나 민음사의 모던클래식시리즈 모아둔 곳 앞으로 가서 혹시 갖고 있지 않은 책이 나왔나 살폈습니다. 그리고는 한국소설 서가도 꼭 훑어봤는데 친분 있거나 좋아하는 소설가의 책이 꽂혀있으면 집에 그 책이 있는데도 사왔습니다. 친한 소설가의 책이 ‘중고책’으로 떠돌고 있는 게 안타깝기도 했고 중고책이 없으면 그 작가들의 새책을 주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 버릇이 조금씩 변해서 나중에는 나름 ‘좋은 책’까지 샀습니다. ‘이렇게 좋은 책이 버려져서(?) 꽂혀있는 걸 두고볼 수 없지’ 뭐 이런 마음이었겠지요. 이렇게 모은 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께 선물로도 주고 저자인 친구에게 돌려주기도 하고 절판된 책은 알라딘 중고책에 내놓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지만 제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사서 여러 권 소장하고 있는 책도 있습니다. 그런 책 중 하나가 가와카미 히로미의 <선생님의 가방>입니다.




‘제대로 그를 부르면 마쓰모토 하루쓰나 선생님이 된다. 나는 그냥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이런 첫문장으로 소설은 시작됩니다. 주인공 오마치 쓰키코는 서른 일곱살 어느 날, 고등학교 시절 국어를 배웠던 선생님을 역전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납니다. 둘 다 그 선술집 단골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도 자주 만났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집니다. 술집 바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술과 안주를 앞에 놓고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가 소설의 주요 장면입니다. 여느 소설처럼 공간이 많이 바뀌거나 갈등이 고조되거나 극적 사건이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소설의 후반부에 극적인 몇 장면이 있습니다만) 소설에는 일본술에 대한 종류와 어느 지방의 술이 최고인지, 선술집의 안주, 일본 국어책에 실린 시 등이 나옵니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이런 사소하고 소소하고 잔잔한 일상 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시내 대형문고에 갔다가 이 책을 빼들었는데 그 자리에 서서 4분의 1 가량을 읽었고 그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사왔었답니다. 독자도 일본 소도시 작은 술집에 앉아있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이 소설의 매력은 소설의 주요배경이 되는 선술집의 공간적 배경과 마쓰모토 하루쓰나 선생님와 오카치 쓰키코가 나누는 일상의 디테일에 있습니다. 한정된 공간과 몇몇의 등장인물로 장편소설을 완성했으니 얼마나 디테일이 살아있는지 짐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소설의 화자인 쓰키코는 주변 사물과 다양한 음식, 술을 마시는 과정, 계절과 날씨의 변화 등으로 그녀의 감정을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말로 번역이 안되는 안주는 일본어를 그대로 적고 길게 풀이를 붙여놓았을 정도입니다. 디테일의 힘이 뭔지 잘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만이 디테일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대부분의 글은 디테일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섬세한 현실 배경이나 디테일한 보여주기는 글의 신뢰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섬세한 감정이나 정서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글을 통해 어떤 주제(메시지)를 전달할 때 날 것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효과가 크지 않습니다.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그것을 감싸는 디테일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모든 글쓰기는 설득의 과정이고, 그 설득은 꼭 논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감정이나 정서를 움직여야 할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때 글쓴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자세히 쓰기입니다.




일론 머스크는 면접 때마다 비슷한 질문을 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면접을 받는 사람에게 살아온 과정을 이야기해달라해서 그 사람이 어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내렸던 결정과 그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묻습니다. 면접인이 직접 겪었고 문제를 해결했다면 세부사항까지 다 알고 있을테고 당연히 대답도 자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경험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사례거나 꾸며낸 이야기라면 파고드는 몇 개의 질문 앞에 말이 막히고 맙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나요? 일론 머스크의 면접방식을 보면 진실도 디테일 안에 숨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세히 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 당연히 귀결입니다만 면밀한 관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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