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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글을 써야하는 이유(2)

- 세상을 향한 촉수 키우기

by 강진



오래 전 ‘어른이 실험실’이란 프로그램이 몇 번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어린이’일 때 못해본 실험을 어른이 되어 해보는 컨셉의 프로그램이었는데 어른들에게 꽤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이 꼬마선충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현미경으로 양파 표피세포를 관찰하고 핵, 세포막, 세포벽 등을 그리는 건 중학교 과학시간에 해봤지만 움직이는 생물을 관찰하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른들은 우선 꼬마선충에 대한 강의를 듣고 밖으로 나와 실험실 주변을 돌아다녔습니다. 습지나 개울에 처박힌, 약간 부패한 나뭇잎에 꼬마선충이 많다고 들었기 때문에 저마다 썩음털털한 나뭇잎 몇 개를 들고 실험실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가져간 나뭇잎에는 다섯 마리 꼬마선충이 있었는데 그 중 두 마리는 매우 활발하게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돌아가며 다른 사람의 꼬마선충을 관찰했는데 저의 꼬마선충만큼 활발한 꼬마선충이 없어서 괜히 우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날 이후 며칠은 현미경에서 본 작고 귀여운 꼬마선충이 어른거렸지만 어느 사이 ‘어른의 실험실’같은 건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인간의 유전체에 대한 기사에서 꼬마선충을 발견했습니다. 기사 안에 ‘꼬마선충’이란 글씨가 눈에 띄어서 왠지 반가워서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유전체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인간의 유전체를 이루는 46개의 DNA분자가 모두 31억 2천만 개의 염기서열로 이루어져 있고, 이 중 단백질을 지정하는 정보를 가진 유전자의 수는 대략 3만 개정도라고 합니다. 단세포 박테리아도 1만 개에 육박하고 꼬마선충도 2만개라고 합니다. 단백질을 지정하는 정보를 가진 유전자 수가 가진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꼬마선충이 2만 개인데 인간이 3만 개에 불과하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썩은 나뭇잎에 기생해 사는,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고 현미경으로만 관찰되는, 꼬마선충도 2만개나 되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겨우 3만 개라니. 어쩐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존재가 왜소하고 초라해 보였습니다. 생물학적으로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데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라고 거만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 중 한 종일 뿐인데 인간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동물인 듯합니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내용을 빌리자면 ‘유전자는 자신의 유전자가 무한 복제되도록 진화해’ 왔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매순간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으로만 살려고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이타적인 행동도 할 뿐더러 끊임없이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싶어합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꽤나 객관적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극단적 의견을 가진 집단과 개인이 존재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객관적 시건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것, 이것이 다른 동물과 다르고 인간이 위대하다면 이것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완벽한 객관이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꽤나 객관적이고 근거있는 시선은 가능하니까 이 글에서는 그걸 객관적 시선이라고 명명하겠습니다. 객관적 시선을 갖고 싶어하지만 쉽게 얻어지는 건 아닙니다. 꾸준히 훈련하지 않으면 어느 새 자기 동굴 안에 매몰될 수 밖에 없습니다. 동굴 속 자기 그림자에 취해서 동굴 밖의 세상을 모르거나 부인하게 됩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것이 더 자연스럽게 진화해 왔다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꾸준히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객관적 시선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그 수단으로 가장 유용한 것이 글쓰기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또 하나의 촉수를 갖는 일입니다. 꾸준히 글을 쓰려면 글쓴이의 신경 하나는 ‘글감찾기’에 가 있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촉수가 생겨나고 자라고 예민해집니다. 촉수는 세상을 향해 뻗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기 내면을 향해 뻗기도 합니다. 세상과 나의 간극을 끊임없이 조정하여 세상을 예민하게 세밀하게 받아들이게 하고 그런 변화를 접하는 나의 상태를 알아차리게 합니다. 영화 <아바타> 속의 ‘영혼의 나무’가 제자리에 있으면서도 뿌리를 통해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듯 말입니다.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누구보다 리더들에겐 세상을 향한 촉수가 필요합니다. 정보는 많이 받아들이는데 그것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은 소홀히 하고 있지 않은지요. 나를 향한, 그리고 세상을 향한 예민한 촉수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입니다. 날카롭고 예민한 촉수로 글쓰기만큼 좋은 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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