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사과를 한 입 베어 문 것 같았다.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사과였지만, 반대편은 벌레가 파먹은 검은 웅덩이처럼 움푹 꺼져 있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점에서, 그것은 마치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속은 조급한 마음이 갉아먹고 있는 것처럼.
삶에서 속도처럼 중요한 덕목도 없다.
빠르게 판단하고, 정확하게 실행하는 능력은 곧 인정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속도가 곧 가치가 될 수 있을까?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움직이려 할수록 초조함이 밀려든다. 마음이 앞서면 실수를 유발하고, 그 실수는 다시 자존감을 깎아낸다. 서두르면 실패를 만들고, 그 실패를 만회하려다 더 큰 실수를 부른다. 그렇게 반복될수록, ‘빨리해야 한다’라는 강박은 더욱 강해진다.
사회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실수를 경험이라 말하지만, 그 말을 믿기 어려운 순간이 많다. 실수하면 기회가 줄어들고, 느리면 도태된다는 불안감이 성급함을 부추긴다. 불안이 나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서두른다.
나는 어떤 일을 하든 서두르지 않는다. 마음은 조급한데, 몸은 늘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내 손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 서두르지도, 멈추지도 않는다.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조용히 흐른다. 마치 강물 아래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물결처럼, 표면은 흔들려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할 때는 누구보다 빨라진다.
마치 지금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중요하지 않은 일에도 초조하게 서둘렀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허무함만 남았다. 나는 자신을 재촉했고, 불안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조급한 마음에 빠져, 당장 읽어야 할 책을 구매하지만 정작 중요한 내용은 알아채지 못했다. 책장을 넘기며 종이에 밴 특유의 냄새를 맡아보지만, 책 속에 담긴 의미는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읽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샀지만, 정작 책은 책장에 꽂힌 채 방치되었다. 마치 책을 소유하는 순간, 그것이 내 것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이런 패턴은 책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는 애타지만, 막상 손에 넣고 나면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필요해서 산 줄 알았던 물건들도, 사는 순간 더 이상 절실하지 않다. 간절했던 욕망은 소유가 되는 순간 무뎌지고, 사라진다. 조급한 마음이 나를 몰아붙였지만, 결국 남는 것은 허전함뿐이다.
느림은 자유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따라 그것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느리게 걷는 순간을 스스로 선택하면 오솔길을 걷는 여유가 되지만, 남이 보면 게으름이라 낙인찍힌다. 마치 앉아 있을 때 튀어나온 배불뚝이처럼, 자연스러운 상태마저 평가받는 것처럼.
서두름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압박한다.
자신을 채찍질하는 마음이, 어느새 타인에게도 똑같이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온다.
내가 초조할 때, 나는 타인에게도 서두름을 요구한다. “왜 이렇게 느려?” “빨리 좀 해!” 그런 말을 내뱉고 나서야 깨닫는다. 나도 그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는 걸.
몸속 깊숙이 박힌 날카로운 송곳이 반복적으로 찌르는 듯한 서늘함이 퍼진다.
불안이 최고조에 이르면 숨이 가빠지고, 신경이 곤두서며,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진다.
성급함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삶을 잠식하는 태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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