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동료, 최소한 이웃

효와 우정 뭐야?

by 김정락

왜 이 주제를 가지고 쓰고 있을까? 가족, 친구 그리고 이웃은 나의 삶에 가장 가깝고, 가까웠던 관계이고, 배경이고, 소재이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드러낼 것인지, 어떤 내용을 쓸 것이지 참 어렵다. 만약 쓴다면 거짓 없는 진솔한 글쓰기가 되어야 한다.


가족 관계도 우정, 즉 우호의 감정이 있을까? 우정은 ‘친구 사이의 정’이다(국립국어원). 가족 관계를 우정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우호적인 감정은 있다고 본다. 그렇게 본다면, 부모와 자식 간의 우정은 존재할까? 우정의 감정보다 더 큰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맺어져 있다. 혈연으로 이어져 있으니 어찌 보니 당연하다. 하지만 당연함이 누구에게나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은 혈연으로 묶여 있지만, 서로가 느끼는 감정의 강도는 다르다. 끈끈한 가정도, 데면데면한 가정도, 서로 미워하는 가정도 같은 집단에 있어도 당사자가 느끼는 감정의 온도 차가 있다. 무엇이 서로 간 차이를 두게 하는 걸까? 구성원 개인 간에 느끼는 감정과 생각의 차이일 것이다. 사회에서 느끼고 당하는 감정은 질책, 질투, 시기, 무시, 시련, 고집, 단절, 이기심, 욕먹음, 혼쭐남 등이다. 이 느낌은 사회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도 똑같이 느낀다. 전체는 부분이 아니라 하나로 보면 이웃과 친구도 마찬가지다. 가족, 친구, 이웃은 서로에게 우호적 감정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릇된 생각도 같이 있다.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고 그 자리에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친밀한 감정을 보내는 것이 있다. 자연이다. 월든의 작가 데이빗 소로우는 “조용히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나는 갑자기 대자연 속에,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속에, 또 집 주위의 모든 소리와 모든 경치 속에서 진실로 감미롭고 자애로운 우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나를 지탱해주는 공기 그 자체처럼 무한하고도 설명할 수 없는 우호(友好)의 감정이었다. 이웃에 사람이 있음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되던 여러 가지 이점이 대단치 않은 것임을 느꼈고 그 후로는 두 번 다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솔잎 하나하나가 친화감으로 부풀어 올라 나를 친구처럼 대해주었다. 나는 사람들이 황량하고 쓸쓸하다고 하는 장소에서도 나와 친근한 어떤 것이 존재함을 분명히 느꼈다. 나는 나에게 혈연적으로 가장 가깝거나 가장 인간적인 것이, 반드시 어떤 인간이거나 어떤 마음 사람이지는 않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부터 어떤 장소도 나에게는 낯선 곳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이야기하고 있다.


역시 자연은 대자연이다. 인간이 그렇게 모질게, 난폭하게 굴어도 애환을 들어준다. 내용에 깊은 공감을 하면서도 직접 경험하지 못해 아쉽다. 그리고 빨간색이 덮여있는 문장에 더 깊은 공감이 간다.



알다가도 모를 효. 대화에서 자신이 원하는 답이나 곤란한 질문이 나오면 짜증 내거나 무시한다. 본인들의 말이 다 맞는다고,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거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틀에 맞지 않으면 장소 상관없이 화를 내며 소리 지른다. 편견과 아집으로 뭉쳐 있고 때로는 무시까지 한다. 너를 위한 것이라 하면서 나의 의중과 의견은 안중에 없고 뭉개버린다. 가족이지만 너무 피곤하다. 세상은 변했는데 옛날 틀 안에 갇혀, 나를 그 안으로 집어놓고 휘두른다.


친하다는 우정, 이웃은 어떻게 구분할까? 예전 젊을 때 객기(客氣) 남아 있지 않다. 그것은 불필요한 에너지 발산이었으며, 버려야 할 감정 덩어리다. 친밀한 감정으로 누군가는 다가왔지만, 그들은 과연 계속 그 마음일까? 아니면 시간이 흘러 변한 것일까? 아니면 그때그때 사익의 마음이었을까?


김정락 단시 어리석었네

나는 어리석었네. 나는 어리석었네. 한참을 몰랐었네. 순수함이라 생각했었네.

그들은 사익을 챙겼고, 나는 어리석었네. 진솔함을, 추잡함을 바꿔가며 다가왔네.

바보로 본 것이네. 만만하게 본 것이네.

눈치채지 못한 내가, 당당하게 말하지 못한 내가, 두려워했던 내가 어리석었네. 어리석었네.


젊었을 땐 왜 몰랐을까. 어른이 된 지금에서 깨닫는다. 깨졌기에 깨달았고 알게 됐다. 나의 심장이, 마음이 쓰리고 비참하다. 속내를 알게 되니 사람이 가려진다. 주변에 사람이 없다고 슬프지도 외롭지도 고독하지도 않다. 쳐 내고 나니 홀가분하고 시원하다.



우주 만물은 분리하고, 분류하면 된다. 쓰레기는 분리하고(분리수거), 감정은 나누어 분류하면 질서가 잡힌다. 그렇게 믿는다. 인생은 혼란스럽고 포장되고 더럽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모르는 것도 나의 죄이고, 잘못이거늘. 세상 밖으로 알을 깨고 나오고 싶다. 진짜 나의 세상으로.


나의 눈과 사상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다. 단계를 뛰어넘는 데 필요하다. 정체되어 있던 나를 깨기 위한 시작점이다. 몽테뉴는 “내가 친분을 가지고 교제하고 싶은 사람들은 점잖고 재능이 있다고 알려진 위인들이다.” 우선 이런 사람이 돼야 나에게 선택의 기회가 있다.


하지만 필요로 의도적 단절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외로움과 고독이 오히려 나를 성장시킨다. 안락함은 자신을 죽인다. 어설픈, 빗나간, 동정, 우정, 애정 그리고 효에서 멀어지고 싶다. 우선 나를 위해 나를 찾고, 쓰고, 읽고, 성공하고, 부자 됨이 먼저다. 꼭 성공해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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