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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글쓰기다

마음으로 먼저 걷는 라운드의 힘

by 김정락

골프의 진정한 매력은 단 하나의 완벽한 샷에서만 오지 않는다. 물론 그 순간의 짜릿함은 강렬하다. 하지만 진짜 골프는, 잘 쳤던 한 번의 샷보다 전체 흐름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런 준비는 골프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일상도 마찬가지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잠깐 마음을 정리해보는 일. 그 짧은 시간 하나가, 하루라는 긴 코스를 더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힘이 되어준다. 미리 준비하면, 예상치 못한 상황에도 덜 흔들린다.


골프장에 나가기 전 머릿속으로 코스를 그려보는 일은 마치 건축가가 설계도를 펼쳐드는 순간과도 닮았다. 그리면 길이 보인다.

어느 날 라운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문득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참 정신없이 흘러갔네.” 잘 쳤는지 못 쳤는지도 가물가물했고,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몇 개의 샷뿐이었다. 전체 경기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조각난 파편의 기억들만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수첩과 펜을 들었다. 라운드 전날이면 홀 하나하나를 글로 설계하기 시작했다.


골프 글쓰기2.png


“1번 홀은 무리하지 말고, 편안하게 드라이버를 휘두르자. 페어웨이 중앙이면 충분하다. 두 번째 샷은 무조건 안전하게, 그린 앞에 떨어뜨리자.”


홀마다의 계획을 글로 써 내려가자, 내 골프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색하고 귀찮았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면 될 일을 굳이 글로 써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글을 쓰고 나서부터는 내 스윙이 달라졌다. 벙커에 빠지든, OB가 나든 예전처럼 허둥대지 않았다.

왜일까. 이미 글 속에서 그런 상황을 한 번쯤은 겪어봤기 때문이다. 감정의 흔들림까지도 미리 예상하고 지나온 것이다.


글쓰기 덕분에 경기 중의 나는, 이전보다 훨씬 차분해졌다.

라운드 흐름을 설계하는 글쓰기는 전략적인 준비를 넘어서, 내 마음의 흐름까지 정리해줬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도 “아, 이거 어제 글에서 지나갔던 장면이네” 하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었다. 그렇게 글로 그린 경기 흐름은 나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작지만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나는 골프를 글로 다시 배웠다. 몇 줄의 문장이 내 스윙을 다듬었고, 흐트러지던 마음까지 잡아주었다.


결국 골프는 흐름의 게임이다. 좋은 골프는, 미리 마음으로 다녀온 경기를 따라가는 일이다. 샷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전체를 그려보는 습관이야말로 내 골프를 성장시킨 최고의 무기였다.

다음 라운드를 앞두고 있다면 펜과 노트를 꺼내보자. 공을 치기 전에, 마음속에서 한 번쯤 경기를 다녀오는 시간. 바로 그 순간이, 진짜 골프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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