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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따라 흐르는 스윙

by 김정락

나는 경기 전마다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오늘 내 몸의 상태는 어때?” “최근에 반복했던 실수는 무엇이지?” 이 질문들은 형식적인 체크리스트가 아니다. 그것들은 내면으로 향하는 작은 문이다.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고, 생각의 먼지를 털어내며 마음의 중심을 다잡는 일종의 의식이다.


하지만 막상 필드에 들어서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잔잔했던 마음에 물결이 인다. 긴장이 몸을 조이고, 평소와는 다른 감각이 스며든다. 스윙을 시작하는 찰나, 그동안 쌓아온 리듬이 흔들린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하나가 몸의 흐름을 끊어놓기도 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 순간이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질문이 또다시 흐름을 바꾸고, 그 바뀐 흐름은 몸속 어딘가에서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낸다. 아주 작고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나는 예전에 스윙의 리듬을 ‘숫자’로 맞추려 했다. 백스윙에 ‘하나’, 다운스윙에 ‘둘’, 임팩트에 ‘셋’. 마치 박자를 세듯 규칙을 만들었다. 처음엔 나쁘지 않았다. 반복적인 훈련에 도움이 됐고, 동작의 기준이 되어줬다. 하지만 곧 한계를 느꼈다. 숫자는 머릿속에서만 반응할 뿐, 몸은 그 숫자에 따르지 않았다. 움직임은 점점 부자연스러워졌고, 리듬은 오히려 박자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꿨다. 더 유연하고, 더 감각적인 리듬을 찾기로 했다. 몸이 스스로 움직이려는 속도를 지켜보고, 숨결의 흐름에 귀를 기울였다. 천천히 숨을 내쉴 때 백스윙을 하고, 편안하게 들이쉴 때 다운스윙을 이어갔다. 숨결 하나하나가 신호가 되어 움직임을 이끌었다. 그렇게 ‘속도’가 아닌 ‘호흡’에 귀를 기울이자, 몸은 점점 내 안의 리듬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 리듬은 누군가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것이다. 남과 비교할 수 없고, 비교해서도 안 된다. 처음에는 불확실했고, 어디로 흘러갈지 몰라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 고유한 흐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스윙은 부드러워지고, 동작은 더 간결해졌다. 마치 복잡했던 선율이 하나의 멜로디로 이어진 것처럼.

리듬을 세운다는 건 결국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필드에서 흔들릴 때마다 나는 내 호흡을 확인하고, 다시 나만의 속도를 되찾는다.

이 리듬은 시계의 초침이 아닌, 살아 있는 호흡과 움직임 속에 존재한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감각이다.


숨결 골프.png


때로는 걷는 스텝에서 힌트를 얻기도 했다. 발걸음 하나하나에 음악이 실리고, 그 리듬을 따라 몸이 정렬된다. 걸음이 곧 준비운동이 되고, 음악이 되어 몸속으로 스며든다. 그 음악은 정해진 곡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감각이 만들어낸 즉흥 연주다. 하지만 이 리듬을 지키는 건 절대 쉽지 않다. 아주 작은 생각 하나에도 균형은 무너지고, 흐름은 끊긴다.


그래도 나는 계속 걸었다.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기억 속의 리듬을 되살렸다. 이 반복 속에서 몸은 기억하고, 마음은 따라간다. 어느새 나는 나만의 템포로 움직이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음악과 하나가 된 순간, 그토록 어려웠던 스윙은 단순하고 아름답게 정리되었다.


골프는 공만을 다루는 스포츠가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흐름과 몸의 언어가 만나 하나의 연주로 이어지는 예술이다. 리듬을 타는 순간, 나는 연주자가 된다. 클럽은 악기가 되고, 필드는 무대가 된다. 그 위에서 나는 공을 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조화를 이루며 음악을 만든다. 진짜 골프는 그 순간 시작된다. 그리고 그 음악은 오직 나만이 연주할 수 있는, 하나뿐인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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