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필 세 대다. 연필심이 글자를 적어 내려가며 쓱싹쓱싹 움직이는 소리가 좋았다. 하지만 꾹꾹 눌러 쓰면 손가락이 아팠다. 그래서인지 연필보다는 펜, 볼펜을 많이 쓴다.
우리 인간도 언젠가는 쓰임이 다해 아프고 노화되면 다른 세상으로 옮기게 되겠지. 연필에서 펜으로 넘어가고 공존하듯, 삶도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마지막, 끝이 아닌 경계가 없는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동존(同存) 하듯 말이야.
볼펜은 색깔도 다양하고 굵기도 다양하다. 무지개 색깔을 넘어 형형색색 색깔이 넘쳐난다. 공책에 적어 놓으면 아름답다. 하나하나 이어져 글자를 만들어낸다. 누가? 쓰는 내가, 네가.
끝까지 다 쓰면 아쉬운 이별. 그러나 흔적을 남기고 가네. 아름다운 흔적을. 내 표현의 흔적을 언어로써 말이야.
사람 성격도 다양하다. 정직한, 성실한, 건전한, 둠 직한, 우아한, 불량한, 얄미운, 오만한, 성급한, 불안한 등. 색깔만큼이나 다양하다. 색깔이 단순했다면 성격도 단순했을까? 성격은 자신을 나타내고 흔적을 남긴다. 행동으로 흔적을 남기는데 아름다움일지, 더러움일지는 나와 너에게 달렸지.
얇은 펜은 가늘게, 굵은 펜은 도톰하게 나온다. 잡는 느낌은 똑같다. 손가락에 닿는 보드라운 부분은 촉감이 좋다. 얇은 펜은 공책을 긁는 느낌, 굵은 펜은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 끄적끄적 손이 지나가는 대로 글자가 되고 생각을 표현해 주는 펜. 둘 다 나에게 고마운 존재.
나는 부드러움을 선호한다. 내가 부드러워서? 부끄러워서? 부드러움을 좋아하지만, 성격을 긁히면 긁어버리거나 긁힌다. 긁혀버리면 꿈틀하지만 말 못 하고 혼자서 흥분을 삼킨다. 소위 육갑하는 성격보다는 상냥한 성격이 좋다. 성냥처럼 불같은 성격은 피하고 싶다.
나는 볼펜의 고마움을 몰랐네. 있으면 당연하듯 쓰고 없으면 불편해하면서 애지중지하지 않았네. 처음으로 나에게 꼭 어울리는 부드러운 녀석을 만나 기쁘다. 나를 통해 표현해 주는 훌륭한 도구를 못 알아보았는지, 무심했다. 무심했네.
인간은 자주 고마움을 잊는다. 특히 옆에 있으면 더욱더 심하다. 당해 보면 그때서야 알게 되고 후회한다. 있을 때 잘하라고 했던가. 인간 본성은 있으면 무관심하고 없으면 찾는다. 그것은 이성 관계와 비슷할까? 모든 인간관계가 그런가?
이 세상에 하찮은 피조물은 없다고 하고선. 하찮게 여겼네. 미안하다. 미안하다. 볼펜아!
소중한 펜. 더 아끼고 귀하게 여길게. 고마워, 고맙다.
평등하다면서. 그런 나는? 너는? 평등한가? 차별하고 있는가? 받고 있는가? 생각이 귀찮다. 차이가 있다고 말하는데. 차이보다는 평등, 차별이 우선적인 사회. 사람 관계에서.
볼펜을 끝까지 사용한 것은 처음이고, 사용하면서 든 느낌이었다. 나름 시처럼 써보려고 했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끝까지 섰다는 의미는 볼펜과 나는 최선을 다했다. 또 내가 무엇을 했다는 증거다. 기분이 좋았다. 처음, 최초라서 의미가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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