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지기 지수의 얼굴에는 명랑하다고 쓰여 있다. 바라만 봐도 그의 타고난 따뜻한 에너지가 느껴지곤 한다. 그런 지수가 요즘 더 건강하게 보였다. 활동적인 사진이 SNS에 꽤 올라왔다.
어느 날이었다. 지수와 친구 넷이 찍은 사진이 피드에 떴다. 단발인 지수보다 더 머리가 짧은 네 명이 사진 속에 있었다. 모두 맑은 얼굴이었다. 처음엔 그 사진을 스쳐 지나가듯 보았다. 지수가 남사친들하고도 꽤 만나네. 이상하게도 그 사진이 머릿속에 떠돌았다. 다시 찬찬히 보았고 알게 되었다. 그 사진 속에는 여성들만 있었다는 것을.
얼마 전 한 영화제의 관객과의 대화 게스트로 박서련 작가가 나왔다. “퀴어 문학이 유행하는데 이런 소설을 읽을 때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는 질문에 박서련 작가는 정세랑 작가의 한 소설을 읽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소설이었지만 작가의 솔직한 심경처럼 보이는 글이었어요. 지금까지 연애 소설을 몇 권 썼는데 이제 맨 정신으로 남자 사랑하는 소설 못 쓸 것 같은 이야기였어요. (중략) 문학계에서도 미투 운동이 크게 반향을 일으켰고 가해자의 성별이 뚜렷한 사건들을 쭉 본 이후 어떻게 이성적으로 이성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여성 작가들이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작가 입장에서 하게 됐어요.”
며칠 뒤 지수 집에 놀러 갔다. 집 문 바깥에는 CCTV 같은 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시에서 1인 가구를 위해 지원해주는 사업이라고. 나는 저런 것도 있었냐며 다행이라고 했다. 지수는 가끔 여성들과 독서 모임을 한다. 멤버 중 한 명이 집 근처 산다며 심심할 때 불러 맥주 한잔할 수 있어 즐겁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고 그 행복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수가 비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해보았다.
이건 모두 5월 한 달간 내가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다. 어떤 발화와 일상을 통과하며 모두의 안전에 대해 또다시 떠올려보았다. 그러니까 나는 한 번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위험을 마주하고 있을 평범한 이웃들의 그것을.
*여기서 지수는 가명이다. 하지만 사실 확인을 하고 브런치에 올려도 되는지 물어보려고 지수에게 이 글을 보여주었다. ‘시에서 1인 여성 가구를 위해 지원해주는 사업이라고’라는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했다. 1인 가구면 성별에 상관없이 다 지원해준다고 했다. 나는 다행이라며 고쳤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의 분위기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