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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끝 Jan 08. 2020

공간의 구석에서

2020년 1월 6일

공간의 구석에서


나는 공간의 입구를 지나면 공간을 훑어보고 공간이 한눈에 보이는 구석을 찾는다. 카운터의 직원과는 가장 멀면서도, 카운터와 구석 사이에 앉은 사람들이 보이는 곳 그러면서는 구석이라는 특별한 위치에 있어 사람들은 내 뒷모습을 볼 수 없는 곳에 앉는다. 사생활과 공생활의 경계가 희미해져 인간관계가 만들어 낸 ‘시선의 감옥’이 지긋지긋한 나에게는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벗어난다는 것만으로도 구석은 매력적인 장소다. 다른 사람이 나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위압감이 사라진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나는 지켜보는 일을 좋아한다. 카페에서 일을 하다 손이 멈춰질 때, 머리에 쥐가 나서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을 때, 기획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의자에 몸을 기대본다. 그리고 카페를 한바퀴 돌아보며 사람들의 리듬을 지켜본다. 사람은 자기만의 리듬이 있다. 걸음걸이에서 느껴지는 리듬, 생각이 소리로 바뀌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속도, 대화에서 밀고 당기는 높낮이, 얼굴근육이 변하며 나타나는 표정, 자신 앞에 있는 상대를 향해 앞뒤로 움직이는 흔들거림, 옷 스타일이 보여주는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는 태도, 이 모든 것에는 사람의 리듬이 있다. 그 리듬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삶의 태도를 옆볼 수 있다. 나는 사람의 리듬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느긋하게 지켜보며 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상상해본다. 


지금 내 옆에 있는 두 남녀는 서로 친구다. 그러나 둘의 분위기는 묘하다. 남자의 목소리는 둘만의 간격을 넘어 내 귀를 강타한다. 과한 정보가 강제로 입력되어 집중력을 흔든다. 남자는 상기된 목소리로 자신의 재력과 능력 그리고 인맥을 어필하고 여자는 조용히 반응한다. 둘은 모두 애인이 있고 그 존재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서로를 향해 기울어진 몸, 그득한 눈빛으로 상대와 눈 맞추기, 공통점을 찾기 위한 대화에서는 숨겨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또 다른 테이블에서는 회의가 열렸다. 청바지에 맨투맨, 세 대의 노트북, 빠르게 주고받는 대화, 멈추지 않는 메모를 보아서는 프리랜서 팀인 것 같다. 리더로 보이는 사람은 다른 두 사람에게 준비된 사항을 체크한다. 서로 탁구를 치듯 빠르게 의견을 주고받는다. 그러더니 클라이언트에게 전화를 걸어 작업비용과 기간 논의한 후에 이메일로 자세한 사항을 첨부했다며 전화를 끊는다. 피곤에 찌든 저들의 얼굴에서 삶의 고단함이 엿보인다. 


자신은 보이지 않지만 다른 사람을 지켜보는 구조는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고안한 원형 감옥, 파놉티콘이 작동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부정하진 못 하겠다. 상대방에게는 배일에 쌓인 존재면서 자신을 지켜보는 존재는 때로 위협적으로 보인다는 것도 안다.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를 지켜보는 일은 다른 사람보다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이 가능한 권력자만 가능하다. 사람들이 아파트의 높은 층을 더 욕망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사소한 치부라도 보이지 않으려는 두려움과 상대의 모든 것을 지켜보며 어떤 행동에도 안정을 확보하려는 불안감이 결합된 욕망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 욕망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그럼에도 변명을 하자면, 이런 버릇이 생긴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더욱이 이름과 얼굴을 매치하는 일은 나에게 고역이다. 특히 상대방은 나의 이름을 정확히 아는데 내가 상대방의 이름을 달리 부르는 순간을 맞닿았을 때 창피하기 일쑤였다. 그러다보니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사람의 리듬을 기억했다. 특유의 리듬은 언제, 어디서든 드러났다. 그 리듬만 기억하면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그 사람의 이름과 리듬을 매치했고 이름을 틀리는 일이 적어졌다. 창피함을 모면한 대가로 나는 안정 욕망에 빠졌다. 창피를 모면하는 일도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안정 욕망에서 비롯된 일이니 결국 나는 처음부터 안전을 욕망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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