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8일
병원에서 난 타자가 된다.
병원에서 난 타자가 되는 기분을 느낀다. 병원은 환자 본인이 알아먹지 못하는, 의사와 간호사 두 집단만의 은어가 난무하는 곳이자 환자에게 수동적인 자세를 강제하는 곳이다. 은어에 대한 물음도 소염제, 진통제, 항생제 등으로 모두 ‘퉁’ 쳐버린다. 이해할 수 없는 대화는 듣는 사람을 소외시킨다. 알지 못하기에 묻지도 못하고 능동적인 행동을 취할 수 없다. 은어를 듣고 기억해 인터넷에 검색하려해도 정확한 발음을 모르기에 정보를 얻기 쉽지 않고, 혹 단어를 정확하게 적어도 전문용어로 가득 찬 설명을 이해하는 것은 불편한 과정을 감수해야 한다. 불친절한 프로세스로 구성된 병원이지만 몸이 아프면 울며 겨자 먹기로 병원을 찾는다.
지난달부터 왼쪽 눈이 충혈되고 앞이 뿌옇게 보였다. 눈 뜨기 힘들 정도로 눈물이 흐르고 관자놀이가 아픈 것이 심상치 않아 병원을 찾아가보니 담당 의사는 상태가 심각하다며 왜 이제야 왔냐고 타박하며 시력 감퇴를 예상하라고 겁주었다. 그러고는 염증으로 안구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 제대로 진단할 순 없지만 검안염, 포도막염, 안구상처 중 하나로 보인다며 며칠간 염증을 가라앉히자고 말했다. 눈병이라곤 결막염, 녹내장, 백내장 밖에 모르던 나는 심각하다는 말에 태어나 처음으로 처방된 약을 빼먹지 않고 먹었다.
이틀 뒤, 다시 찾은 병원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담당 의사가 바뀌어 있었다. 분명 예약까지 왔는데, 심각한 병이라던 담당 의사는 자리에 없었고 새로운 의사는 검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포도막염이라는 생소한 병명을 진단받았다.
[포도막염이 무엇인가요? 결막염과 다른 건가요?]
[안구에 염증이 생겨 발생한 병입니다. 감염성과 비감염성,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아직도 안구에 염증이 꽉 차서 파악이 불가능하네요. 일단은 스테로이드를 과하게 써서 억제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텍스터(?) 주사 맞고 가세요.]
정체모를 주사를 처방받은 나는 진료실을 나오며 주사를 맞다 안구가 터지는 것 아닐까라는 두려움과 이름 모를 주사를 왜 맞아야 하는지 궁금함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찾아오는 통증에 두 잡념은 매몰되었다. 눈물로 범벅된 왼쪽 눈을 부여잡고 카운터에 가자 간호사의 불편한 안내가 들렸다.
[김정모님 되시죠? 예약 잡아드릴게요. 박원장님으로 해드릴까요? 김원장님으로 해드릴까요? 이전까지는 박원장님에게 받으셨는데 오늘은 김원장님에게 받으셨어요.]
[담당 의사가 바뀌어도 괜찮나요? 저 이제까지 두 분의 원장님에게 진료를 받았는데 두 분의 소견이 조금씩 다르시더라고요. 확인 후에 예약을 잡아주시겠어요?]
간호사는 왜 나에게 담당 의사를 결정하라고 묻는 것일까. 두 의사 모두 간호사가 체크한 안구 검사 기록표를 보고 내 눈을 체크하고서는 술, 담배를 하지 말라는 충고 외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 나를 향한 말이지만 내가 이해 못할 말만 반복했다는 점도 공통점이었다.
나는 내 병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 미세먼지 때문인지, 아토피 때문인지, 병의 원인을 알아야지 조심할 것 아닌가. 그리고 모든 의사가 하는 주문 말고 스스로 어떻게 관리해야하는지 자세히 알려줬으면 좋겠다. 병원은 나에게 한 주에 몇 만원씩 청구하고 몸에 좋지도 않은 스테로이드를 대량으로 주입하면서 자세히 알려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전문가인 의사는 비전문가인 나도 알아먹게 병을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염증은 가셨고 시력도 회복되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정확한 병명과 원인을 모른다. 마치 모르는 손님이 다녀간 기분이 든다. 우리 집에 흔적은 남겼지만 나는 누군지 모르는 그런 손님 말이다. 병원에서는 재발의 위험이 있기에 항상 조심하라고 말한다. 그때마다 나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지만 속으로는 가로 젓는다. ‘무엇을?, 어떻게?’ 어차피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주문 같은 말이기에 묻지 않는다. 병원을 나오며 속으로 생각한다. 나도 알아먹게 병을 설명해주는 의사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