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 냄새... 참 좋다."
"향냄새... 참 좋다."
뒷자리에 탄 노인들이 거의 동시에 감탄했기에 김노인은 그제야 안심했다. 아들이 제사상 너머에 있는 자신의 사진을 올려다보며 큰절을 두 번 올렸다. 술을 따라 제사상에 올리고 또 큰절 그 옆에서 사위가 술을 따르고 있었다. 김노인은 오늘에야 자신에게 사위가 생겼다는 걸 알았다. 택시에서 사위를 굳은 얼굴로 지켜보던 김노인이 입을 열었다.
“듬직한 게..,. 잘 골랐네”
김노인은 딸이 결혼할 거였다면 자신이 떠나기 전 했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 사위와 진하게 술도 한잔하고 딸에 대한 각별함을 사위에게 제대로 전했을 텐데..... 딸이 입장할 때 누구와 입장했는지 아버지가 없어 속상하지는 않았을지 마음이 쓰였다.
언제나 어리기만 한 딸이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김노인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1년이 지났지만 1년 전 마지막 날이 아직도 생생했다. 김노인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직 젊은 축에 속하는 칠순을 앞두고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며 아침밥을 먹다가 쓰러졌다. 119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실려가 여러 가지 복잡한 검사를 하고 바로 진단을 받았음에도 치료를 시작하기도 전에 김노인은 죽었다. 허망했다.
아들이 직장을 잡고 가정을 이루어 토끼 같은 손주를 막 안겨주었고, 일평생 딸바보로 살게 해 준 딸은 여전히 김노인을 만나러 한 달에 두 번씩은 꼬박꼬박 본가로 들어왔으니 걱정할 일도 부러워할 일도 없이 모든 게 편안했는데 말이다. 모든 게 자리를 잡아 드디어 안정된 세계에 발을 들였다고 생각했을 때 세상을 떠났고 그렇게 정돈된 세계를 다시 헝클어 남은 가족들을 다시 슬프고 불안정하게 만들어버렸다. 차라리, 가족들을 많이 힘들게 하지 않아서 잘 된 터였다고 애써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끝이 없었다.
그렇게 옛 생각에 잠겨있을 무렵 거실창이 환하게 열렸고 가족들이 현관문을 열어두고 마당으로 나왔다.
살아있는 자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택시가 마당에 정차하고 하나둘 노인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입장할 차례였다.
일평생 자신이 살았던 집을 이렇게 오랫동안 비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김노인은 이대로 가족들 곁에 남아 투명인간이라도 남고 싶은 어린아이 같은 생각도 해보았다. 떨리는 발걸음으로 김노인이 앞장서서 거실로 들어가자 커다란 교자상에 음식들이 노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노인이 자리를 잡고 탕국을 떠서 한 모금 먹자 다른 노인들도 식사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아련한 맛....
탕국에서는 부인과의 첫 만남의 설렘이 잔뜩 배어있었다.
떡에서는 첫아들을 낳고 마주했던 세계의 찬란함이 묻어 있었다.
그때 박노인이 말했다.
“음, 전에서 정말 정말 그리움의 맛이 나는구먼 나까지 느껴지니 이걸 만든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진한지 정말 정말 부럽구먼"
박노인은 코끝이 찡한지 연신 코를 비벼댔다.
전은 며느리가 만들었다.
재료손질은 김노인의 부인이 했지만 지글지글 굽고 뒤집고 한 것은 하나뿐인 며느리였다.
어느새 집안으로 들어온 가족들이 자리를 잡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어머니, 아버님이 동그랑땡 정말 좋아하셨는데 말이에요. 고기보다 해물을 좋아하셔서 해물을 아버님 쪽으로 놔드리면 그걸 또 제 앞에 놔주시고 그러셨어요. 전 고기동그랑땡이 더 좋았는데 말이에요. “
며느리는 심성이 고운 사람이었다. 얼굴이 예쁘다거나, 집안이 훌륭하다거나, 직업이 좋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처음 인사 왔을 때부터 얼굴에 심성이 그대로 비쳐서 이것저것 재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이번엔 나물을 맛보았다.
부인의 맛이었다.
평생 재미없는 자신과 함께했던 부인은 모든 걸 희생했다.
본인보다 좋은 직장에 다녔지만 아이들을 낳고 키우느라 포기해야 했고 아이들에게 엄마손이 덜 갈 무렵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야겠다고 홍조를 가득 머금고 설레하던 그녀를 기다리던 일은 시어머니의 병시중이었다.
시어머니 마저 세상을 떠나고 아이들도 독립하자 정말로 김노인의 부인에게 온전한 자신만의 시간이 찾아왔지만 김노인의 부인은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 한 건지, 번번이 좌절되었던 젊은 날의 기억 탓인지 그때부터는 잔잔한 나날의 은은한 삶을 택했다.
나물에서는 그녀의 씁쓸한 인생의 조미료가 쳐진 것 같았다. 끝맛이 씁쓸한 나물을 맛보고 그녀의 일평생이 이런 맛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기가 어려웠다.
모두들 식사를 마쳤는지 조용히 택시에 올라탔고 김노인은 남겨진 가족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1년 새 많이 자란 손주 녀석이 동그랑땡을 양손에 집어 들고 먹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손주 녀석의 머리를 헝클어보기도 하고 통통한 볼을 꼬집어 보기도 했지만 손주 녀석은 동그랑땡을 다 먹고 약과를 손에 든 채 거실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딸의 눈가가 촉촉해진 걸 보고 김노인은 딸의 등을 쓰다듬고는 조용히 읊조렸다.
“울지 말거라 아비는 잘 지내고 있으니."
옆에서 딸의 어깨를 쓰다듬는 사위를 한동안 멀거니 바라보던 김노인은 커다란 사위를 작은 몸으로 안아주었다.
“잘 부탁하네.”
택시에서 클락션이 울렸다.
이제 올라가야 할 시간인 듯했다.
마지막으로 김노인이 부인 곁으로 다가가 조용히 손을 잡았다.
부인도 그 손길을 알아차렸는지 음식을 먹던 분주한 손놀림을 멈춘 채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며 읊조렸다. “아버지가 그래도 좋은 양반이었어, 힘들 때면 항상 손을 잡아줬었고 내가 하나 둘 내 것들을 포기할 때면 미안해하면서 내 눈치도 봐주고 고마워도 해주고 그때 당시 다른 집 양반들에 비하면 한없이 다정한 사람이었어."
덤덤한 듯 울리는 목소리의 끝에 슬픔이 잔뜩 배어있었다.
“고맙네, 그렇게 기억해 줘서 그리워해줘서 고마워. 자식들하고 좋은 때 더 보내고 아프기 전에 신호 보내면 내가 미리 배웅 나옴세."
“잘 먹고 가네, 1년 뒤에 또 옮세.”
마당에서는 아들이 지방을 태우고 있었다.
하얀 연기가 하늘로 솟아오르자 택시도 그 연기길로 솟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