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인간의 실존이자 부조리다.'
소설 속 이야기들은 종종 우리와 닮았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곧바로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기엔 조심해야 한다. "그래, 이게 내 모습이야"라는 단념은 그저 깊이 없는 자기 위로에 불과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더 나아가, 그 단념이 진지한 반성과 성찰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조정래 선생님의 책을 처음 읽었다.
[황금종이]. 제목부터 강렬하다. 돈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누구인가?' 묻는 듯한 책 띠지의 문구가 마음을 찌른다. 우리는 정말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니, 돈은 이미 우리 삶의 목적이 되었다. 이 오래된 거짓말. '돈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이제 그 말은 철저히 거짓이라는 걸 안다. 인생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 되었다. 작가는 그것을 아주 노골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넌 아니라고?" 그 목소리는 우리를 벗어날 수 없는 현실로 밀어 넣는다. 우리가 속물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속물일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부끄럽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돈은 인간의 실존이자 부조리다.'
이 명제는 고전적인 철학 문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가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돈의 부조리함을 극복한 사람이 있을까? 석가모니는 그 문제를 풀었다. 그의 해탈은 윤회와 부조리에서의 자유를 의미했다. 하지만 예수는 그 문제를 풀지 못했다. 그는 인간의 한계 속에서 생을 마감했으니까. 그래서 내 머릿속에서 예수는 서른셋 이후로 사라진다.
사랑은 달콤한 독이다.
젊은 시절, 우리는 사랑에 빠져 현실을 보지 못한다. 그 사랑은 결국 우리의 눈을 가린다.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죽고, 돈 때문에 자살한다. 절망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곰팡이처럼 피어오르는 절망 말이다.
김승기의 이야기를 보자. 그는 로또에 2억 3천만 원을 쏟아부었다. 그는 그렇게 해서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환상이다. 진정한 승리는 그곳에 없다. 그 누구도 승리하지 않았다. 한암 스님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진정한 해방은 열반에 있다. 우리는 돈에 쫓기거나, 돈을 좇으며 살아간다. 극복이란 무엇일까? 부조리 속에서 존재 가능성을 찾는 것이다. 돈에 지배당하면서도 그 안에서 우리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