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어디 쉬운 가요?
40대가 되면 인생이 평온할 줄 알았다. 뭔가 자리를 잡고, 그 자리를 오래도록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매일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같은 길을 걸어,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사람들과 같은 얘기를 나누는 일상이 계속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인생은 늘 예상 밖이다. 나는 최근, 20년 동안 해왔던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정이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매일 아침, 같은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옷을 갈아입으며 ‘오늘도 똑같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게 참 편했다. 출근길에 마주치는 익숙한 풍경들, 늘 마시는 커피,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반쯤 마른 선인장까지. 이 모든 게 나의 일상이자, 나를 지탱해 주는 작은 기둥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기둥들에 작별을 고할 시간이 다가왔다.
솔직히 말해, 처음 그만두기로 결심했을 때는 마음이 무척 복잡했다. 20년 동안 나와 함께했던 것들을 떠나보낸다는 게, 마치 오랫동안 길렀던 강아지를 먼 친척에게 보내는 것처럼 낯설고 서글펐다.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이 얼마나 큰지, 막상 떠나려고 하니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이 익숙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갈증도 분명히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찾지 않는 나 자신이 답답하게 느껴졌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 그 익숙한 것들과 이별할 때가 왔다. 출근길에 늘 마주치던 가로수, 사무실 창문 너머로 보이던 하늘, 그리고 매일같이 나를 반겨주던 동료들의 얼굴까지. 그 모든 게 이제는 과거가 된다.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텅 비는 듯하지만, 나는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별은 언제나 좀 그렇다. 두렵고, 아쉽고, 때로는 조금 서글프다. 하지만 그 이별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임을 알기에,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게 익숙했던 것들로부터 벗어나, 다시 새로운 도전을 마주할 시간이 온 것이다. 물론 불안하고 두려울지 모르지만, 뭐 어쩌겠는가. 인생이란 그런 거니까.
내일 아침, 나는 더 이상 그 출근길에 오르지 않는다. 이제는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던 그 익숙한 풍경도, 자판이 닳아버린 키보드도 나의 일상이 아니다. 그 대신, 새로운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 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불확실함이 오히려 나를 다시 살아있게 만든다.
그러니까,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은 결국 나를 다시 살리기 위한 과정인 셈이다. 익숙함에 푹 젖어 있던 나를 흔들어 깨우고, 새로운 가능성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 그래서 나는 이 이별을 슬프게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나를 지켜줬던 모든 익숙한 것들에게 감사하며, 가볍게 손을 흔들어본다. ‘잘 있어, 내 낡은 키보드야. 네 덕분에 참 많이 배웠다. 이제는 좀 쉬어도 돼.’
어쩌면 40대라는 나이는, 인생의 또 다른 챕터를 시작하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나를 지탱해 준 익숙한 것들을 뒤로하고,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시간. 그리고 그 길에서 또 다른 익숙함을 만들어가며 살아갈 것이다. 뭐, 인생이란 게 늘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