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어쩌면 영혜와 같을지 모른다 생각하며
2016년 5월은 한강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최소한 당분간 한국 문학계, 출판계에서는 틀림없다. 2분에 한 권씩 책이 팔린다고 한다. 항간에는 책이 너무 잘 팔려 구하기가 어렵다는 말이 들렸고, 다시금 찍어낸 책에는 수상 1주일도 안 되어 수상 소식이 책 표지에 예쁘게 반영이 됐다. 나 역시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작가였기에 시류에 편승해 전자책으로 냉큼 책을 샀다. 기술의 진보 덕에 현시점 최고 베스트셀러를 접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1분도 되지 않았다.
소문으로만 듣던 한강의 문체는 흡입력 그 자체였다. 이처럼 몰입해 책장을 넘긴 게 언제인가 싶을 정도였다. 불가피한 상황에 의해 조금 읽다 책을 덮고, 다시금 꺼내 이어 읽었다. 일터에서건, 대중교통 속에서 건, 집에서 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은 건 모교 근처 맥주집이었다. 그 끝남이 너무 아쉬웠다. 더 적확하게 표현해보자면 내용이 그렇게 끝나는 게 아쉬웠다. 두 자매가 차에서 내린 뒤가 너무도 궁금했다. 영원히 그 소설 속의 세계가 지속되길 바랐다. 마치 섹스 영상이 절정, 사정 없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몽고반점-의 주인공처럼.
영혜가 꿈에서 본 얼굴은 대체 뭘 상징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녀의 형부는 그 무언가를 스치듯이라도 느꼈던 것일까? 이 둘 사이의 인혜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소설은 이 세 명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영혜는 신비롭다. 악몽을 꾸고 채식을 한다. 그리고 그녀는 점점 미쳐간다. 후반부 그녀는 그녀가 나무가 되리라 믿는다. 범인의 시각에서 그녀는 미쳤다.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언니에게 그녀는 되묻는다. “왜 죽으면 안 돼?” 그녀가 미쳤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거침없이 죽음까지 생각을 확장하며 그녀가 떠올리고 생각한 건 무엇일까? 인간의 끊임없는 고민이었을까? 아직 미숙한 나는 알 수 없다. 한강은 그 연결고리로 채식주의자가 되는 모습으로 그려냈다. 그것도 몹시 매끄럽게.
이런 그녀에게서 영감을 얻은 형부는 뭘 느꼈을까? 몽고반점이 그에게 준 영감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왜 그의 예술의 최절정 부분이 섹스의 형태로 표현돼야 했을까? 소설은 여전히 내게 물음표를 던진다. 영혜에게의 육식과 그에게의 섹스는 어느 접점이 있을까? 그가 몸에 그린 그림들은 어떠한 마음의 평화를 영혜에게 줬을까?
또 한 침대 위의 동생과 남편을 본 인혜의 심정은 어땠을까? 항간에 소문을 장식하는 막장 스토리와 같은 내용이지만, 소설 속 장면은 전혀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다. 인혜가 영혜의 병원에서 본인의 동생을 보면서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끝내 설득되지 않는 동생을, 괴로워하는 동생을 데리고 병원을 나온 그 기분은 어땠을까? 그리고 그들은 나와 어디로 향할까?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도록 인혜는 영혜를 놔둘까? 내 생각엔 그 둘은 구급차에서 내려 다른 어떠한 곳으로 가 진정 영혜가 나무가 되도록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너무도 이상한 영혜지만, 그런 영혜가 전혀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책을 덮을 때까지. 오히려 우리들 삶의 한 조각이 도드라지게 표현된 듯 느껴졌다. 우리 모두는 그런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