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숲을 거니는 아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처음 담은 날
길을 걸을 때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무더위가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을 나는 참 좋아한다. 때론 곧 다가올 겨울 추위가 좀 두려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단풍을 즐기며 산책을 하기에, 산에 오르기에 딱 좋은 날씨를 지닌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또 처마 밑에 떨어지는 가을비 소리를 들으며 막걸리 한 잔에 바삭한 김치전 한 입 먹을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을 즐길 수 있는 날씨이기에 좋아한다. 그런데 이러한 서늘한 바람과 단풍 외에도 정말 가을이 왔다고 바로 알아챌 수 있는 힌트 중 하나가 바로 옷차림이다.
알록달록 예쁘게 물든 단풍을 구경하기에 안성맞춤인 시즌인 만큼 잘 알려진 단풍명소와 숨겨진 명소 중 어느 곳을 갈지 선택하기도 어렵지만, 이렇게 여행을 준비하면서 항상 신경이 쓰이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옷이기 때문이다.
때론, 찬바람을 잘 막아주기도 하고 걷다 보면 흐르는 땀 배출이 잘되도록 하는 등의 기능성을 지닌 등산재킷이나 조끼 등 야외 의류는 언제부턴가 가방 속에 꼭 챙겨야 하는 필수품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등산복과 가방 등 야외용 제품들의 판매량도 함께 증가하는 계절이 바로 가을인 것이다.
실제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의 자료를 살펴보면, 2015년 기준 한 달에 한 번 이상 등산이나 등반을 즐기는 인구가 전체 성인 남녀(대상자 4,040만 명)의 63%에 해당하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나이별로는 50대가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는데, 20대 층의 비율이 2008년 대비 2배에 달하는 수치를 기록해 젊은 층의 등산 및 등반에 대한 관심도가 증가추세라는 점도 눈에 띄는 결과였다.
또, 다른 연구자료의 기능성 등산재킷 사용경험에 관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1.5%가 기능성 등산재킷을 입어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등산재킷을 포함한 야외용 제품들은 바람을 막아주는 기능 외에 땀이나 열 배출이나 빗물 등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등의 기능들을 특히 강조하는데, 최근에도 다양한 제품들을 출시해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야외용 제품 속에 유해 물질이 들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알고 있는가?
그린피스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야외 의류와 신발, 배낭이나 텐트, 침낭 등의 캠핑용품, 하이킹 장비를 대상으로 성분분석을 한 결과 우리 몸에 해로운 독성물질인 PFC가 검출되었다.
특히 분석대상 제품 중 재킷 11벌과 바지 8벌, 신발 7켤레를 비롯해, 배낭 8개, 텐트 2개, 침낭 2개, 등산용 밧줄 1개, 장갑 1켤레 등, 총 40개 야외용 제품 가운데 PFC가 검출되지 않은 제품은 단 4개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에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또한, 검출된 제품 중 총 11개 제품에서 잔류성이 강한 이온성 PFC인 PFOA가 노르웨이의 규제 허용치인 1㎍/㎡를 초과하는 용량으로 검출되었으며, 신화학물질관리제도 REACH의 규제에 따라 고위험성우려물질SVHC; Substance of Very High Concern로 분류되어 사용규제가 제안된 물질이라는 점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PFC에 대하여….
PFC Per- & poly-fluorinated chemicals; 과불화화합물는 방수성과 방 유성이 뛰어나 섬유와 가죽제품을 포함한 다양한 곳에서 산업공정과 소비재에 사용되고 있는 물질이며, 특히 PFC 물질 특성상 화학적으로 안전성을 지닌다는 이유로 야외활동복의 의류산업에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야외용 제품 외에도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PFC 물질 사용의 예는 테플론 Teflon이라 불리는 주방용품의 논 스틱 코팅제로 사용되는 불소계 폴리머 PTFE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PFC계 물질이 분해가 어려워 오랜 세월 동안 잔류하고 분해 속도가 느려서 한번 배출된 PFC는 장기간 잔류하고 전 세계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게 된다는 점이 문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PFC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산지의 호수나 눈에서도 검출되며, 북극곰의 간이나 사람의 혈액에서도 발견되는 등 몸에 축적된다는 사실이다. 또한 일부 PFC가 생식기능을 저하하고 암세포 증식을 유발하며, 호르몬 체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동물실험을 통해 나타났다.
그 밖에 2012년부터 2014년 그린피스의 보고서를 살펴보면, 야외 의류와 신발의 제품에서 휘발성 PFC가 대기 중으로 배출된다는 점이 알려진 만큼 많은 과학자가 PFC 사용중단을 외치며 마드리드 성명서 전 세계 38개국 200여 명의 과학자가 사전예방법칙에 따라 섬유제품을 포함한 소비재의 생산 공정에서 모든 종류의 PFC 사용 중단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에 서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발맞추어 세계 각국에서도 PFC에 대해 배출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거나 대폭 줄이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국제협약인 스톡홀름협약의 경우 이온성 PFC 물질인 PFOS를 잔류성 유기오염물질 POP; Persistent Organic Pollutant로 분류하는데, 협약을 맺은 나라들의 경우 의무적으로 생산과 사용에 대한 규제 조처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노르웨이의 경우 세계 최초로 2014년 6월부터 이온성 긴 사슬 PFC가 1㎍/㎡ 이상 함유된 섬유 판매를 금지하기도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아직 이러한 PFC-Free 행보를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
그린피스는 2015년부터 디톡스 야외활동복 캠페인을 통해 야외용품에서 유해 물질, 즉 PFC 퇴출을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캠페인은 시민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의 목소리에 힘입어 노스페이스, 블랙야크 등 전 세계 수많은 야외활동복 회사에 방수 및 발수 기능성 소재(고어텍스_GORE-TEX) 제조사이자 공급회사인 고어사 섬유사업부의 PFC 퇴출에 대한 약속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 린피스의 자료에 따르면, 고어사 섬유사업부는 2020년 말까지 일반 야외용 제품용 소재에서, 2023년 말까지는 전문 야외용 제품용 소재에서도 PFC 사용을 중단할 것을 약속했다고 한다.
또한 실제 PFC를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성 대체 원단이 나와 있으며 이미 파라모Paramo, 퓨야Pyua, 로타우프Rotauf, 곤소Gonso, 디드릭슨즈Didriksons, 피엘라벤Fjallraven를 포함한 소규모 야외용품 제조사들은 PFC를 포함하지 않은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비자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야외 의류 구매 시 단순히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의 의류라서, 다양한 기능성을 내세워 선전하는 제품의 특성을 이유로 옷을 구매하기보다, 나에게 지금 꼭 필요한 옷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그리고 앞으로 야외 의류를 구매할 때는 PFC-Free 표기를 꼭 확인하는 습관을 갖도록 하자.
<참고 문헌>
-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 《등산·트레킹 국민의식 실태 조사 및 친환경 아웃도어 인증제조사》, 2015.
- 한국소비자원, 《기능성 등산재킷 사용경험에 관한 사전 설문조사》, 2015.
- 그린피스, 《남겨진 흔적 아웃도어 제품 안에 감춰진 유해 물질 PFC》, 2016.01.25.
- https://www.greenpeace.org/korea/update/5545/blog-health-victory-pfc-free-na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