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로사와 아키라, 〈내 청춘에 후회는 없다〉
C21. 이제는 볼 수 없는 인간형 – 구로사와 아키라, 〈내 청춘에 후회는 없다〉(1946)
몇 가지 매혹의 조건들
우선, 제목이 참 근사합니다.
저는 ‘청춘’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턱대고 가슴이 뜁니다. 이 점에서는 저한테 오시마 나기사의 〈청춘 잔혹 이야기〉(1960)도 예외는 아닙니다.
게다가 ‘후회는 없다’라니요? 얼마나 기개 넘치는 도저한 선언입니까.
아닌 게 아니라, ‘후회 없는 청춘’이야말로 우리네 인생의 로망임을 그 누가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무턱대고 덜컥 낚일 만한 매력적인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적어도 저한테는요.
다음은 배우들입니다.
그 첫째는 당연히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1949)과 〈동경 이야기〉(1953)에서 주인공이었던 하라 세츠코지요. 또, 당시 일본 영화들에서 비중 있는 조연으로 눈부신 활약을 보였던, 다소 젊은 날의 스기무라 하루코도 있습니다.
더불어, 구로사와 아키라의 유니크한 데뷔작 〈스가타 산시로〉(1943)의 주인공이었던 후지타 스스무도 빼놓을 수 없고, 야마나카 사다오의 유쾌한 코미디 시대극인 〈백만 냥의 항아리〉(1935)와 구로사와 아키라의 〈호랑이 꼬리를 밟은 사나이〉(1945)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오코우치 덴지로도 놓칠 수 없지요.
특히 이 오코우치 덴지로는 하도 분장과 연기가 절묘해서 여간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못 알아보고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입니다. 군말할 필요가 없지요.
한데, 주인공이 하라 세츠코입니다. 물론 하라 세츠코는 오즈 야스지로의 파트너입니다. 다카미네 히데코가 나루세 미키오의 파트너고, 다나카 기누요가 미조구치 겐지의 파트너이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구로사와 아키라야말로 하라 세츠코한테서 ‘다른’ 면모를 뽑아내는 데 성공한 단 한 명의 감독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루세 미키오의 하라 세츠코는 오즈 야스지로의 하라 세츠코에 견주어 크게 다르지는 않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구로사와 아키라의 하라 세츠코는 확실히 다릅니다. 무엇보다도 〈백치〉(1951)가 압권이지요.
한데, 이 영화 〈내 청춘에 후회는 없다〉의 하라 세츠코도 〈백치〉의 하라 세츠코 못지않게 ‘다르다’라는 것이 제 느낌입니다.
‘대단한 하라 세츠코!’라고 하며 감탄하기에 앞서 먼저 ‘역시 대단한 구로사와 아키라!’라고 하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헌신적이고 인간적인 인물 유형들
물론, 사극이나 시대극을 제외한 현대극이라는 범주에서 옛날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시대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겠지만, 대체로 오늘날에는 보기 힘든 인간형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데, 제 감상(鑑賞)으로는,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에 나오는 인간형들은 그저 보기 힘든 유형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가슴을 뻐근하게 만드는 어떤 압도적인 면모를 지닌 인간형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첫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인물은 역시 〈이키루〉(1952)의 시무라 다카시일 것입니다. 그런 ‘헌신적인’ 공무원을 과연 지금 이런 시대에 그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이키루〉의 시무라 다카시는 압도적이었지요.
이 시무라 다카시 역에 빌 나이를 기용하여 올리버 허머넌스가 〈이키루〉를 리메이크한 영국 영화 〈리빙 : 어떤 인생(Living)〉(2022)과 같은 사례를 보면, 그런 인물형에 대한 향수는 시대와 지역과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것인가 봅니다.
제게는 〈조용한 결투〉(1949)의 미후네 도시로 또한 잊을 수 없는 인간형입니다. 과연 그런 ‘인간적인’ 의사(醫師)를 지금 이런 시대에 그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싶은 것이지요.
한데, 〈내 청춘에 후회는 없다〉에는 그런 드문 인간형이 둘이나 나옵니다. 저는 이 점이 몹시도 흥미롭고 감명 깊었습니다.
이제는 보기 드문 인간형 하나 - 하라 세츠코
우선, 그 하나는 당연히 하라 세츠코입니다.
이 여인은 명망 높은 법학 교수의 딸로, 어찌 보면 순진무구하게 자라서 어지간히 제멋대로에 고집불통의 면모도 있는, 전형적인 ‘귀한 집안의 딸’로 보입니다.
그러니, 이런 여자가 아버지의 제자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설정도 그리 새로울 것은 없지 않을까요.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영화의 제작 시기는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46년입니다. 따라서 미군정 치하의 분위기가 아무래도 반영되지 않을 수 없었던 탓이겠지만, 영화는 1930년대에서 40년대에 걸쳐 ‘반전운동’을 하는 교토대학교 법학부 학생들 이야기입니다.
기본적으로 반전 메시지가 시종일관 노골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설정입니다.
그 학생들 가운데서도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잘생긴 남학생이 바로 후지타 스스무이고, 하라 세츠코는 바로 그를 사랑합니다.
1930년대 일본에서 반전운동을 하는 학생이라면 당연히 탄압의 대상이겠지요.
이쯤 되면, 교수의 딸이 꼭 사랑이 아닌 연민이나 연대의 감정에서라도 마음을 빼앗길 법한 조건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남학생 후지타 스스무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학교를 떠나고, 그 뒤로도 지하운동을 계속하다 마침내 체포되어 끝내 종전을 보지 못하고 옥중에서 사망하기까지의 과정은 이런 내용의 이야기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전개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하라 세츠코가 요지부동, 일편단심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하라 세츠코는 지하운동을 하는 후지타 스스무를 직접 찾아가 그를 향한 자기의 마음을 드러내고, 당연한 듯 스스로 그의 아내가 됩니다.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습니다. 올릴 수도 없는 처지지요. 그냥 두 사람은 어느 날부터 부부가 되어 부부로 살아갑니다.
이 과정에서 후지타 스스무는 하라 세츠코를 도저히 밀어내지 못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하라 세츠코는 고집스럽습니다.
문제는 후지타 스스무가 옥중에서 고문 끝에 죽고 난 다음입니다.
하라 세츠코는 남편 후지타 스스무의 뼈를 안고 그의 고향으로 내려갑니다. 남편의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시골이지요.
물론 이 설정도 시대 배경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러시아에서는 187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1930년대에 있었던 저 ‘브 나로드 운동’의 영향 또는 성격이 느껴지는 국면입니다.
그러니까 하라 세츠코는 그 길로 남편의 고향에 눌러앉아 그 노부부, 곧 시부모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귀한 교수 집 딸이 피아노를 치던 손으로 농기구를 손에 쥐고 농사짓는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여건은 만만치 않습니다. 남편의 부모는 이 ‘며느리’의 느닷없는 출현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시골의 무지렁이 농사꾼 집에 도시의 귀한 집 딸이 곱디고운 자태로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의 뼈를 안고 나타나 거기에 눌러앉아 살겠다고 하니, 퍽도 어처구니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서로 신분이 다르고, 게다가 아들도 이미 죽은 뒤입니다. 그러니 하라 세츠코가 그들한테 신뢰감을 심어주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게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아직은 엄연히 전시(戰時)입니다. 후지타 스스무는 당시 일본에서는 일종의 역적입니다. 게다가 적과 내통하여 이적행위를 한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옥중에서 죽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 노부부와 하라 세츠코를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심지어 짐짓 그들의 농사를 방해하기까지 합니다. 온 마을이 그들을 왕따 시키는 것이지요.
속절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어쨌거나 조국을 배반한 스파이의 가족이니까요.
하라 세츠코는 이런 두 겹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 처지입니다.
하지만 이 하라 세츠코는 어디까지나 구로사와 아키라의 하라 세츠코입니다. 당연히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냅니다. 무한한 인내와 강인한 의지력으로 고되고 고된 노동을 하면서요.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고, 당하면 다시 시작합니다. 가히 초인적인 정신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하라 세츠코는 그 노부부, 시부모의 마음을 얻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전쟁이 끝납니다. 세상이 바뀐 것입니다.
후지타 스스무는 스파이의 혐의를 벗고, 외려 훌륭한 인물로 칭송받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기립니다. 당연히 시골 사람들의 마음도 그에 발맞추어 덩달아 바뀝니다.
놀라운 것은 이제부터입니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하라 세츠코는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 본연의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한데도 하라 세츠코는 시골에서 계속 살아가기로 마음먹습니다. 도저히 땅을 버릴 수 없고, 차마 그곳 사람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떠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잠시 부모님을 뵙기 위해 교토로 올라온 하라 세츠코는 예전에 자신이 치던 피아노 앞에 앉아서, 이제 세상도 바뀌었으니까 그만 집에 돌아오라고 하는 어머니께 차분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제 자기 손은 피아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요. 자신은 그곳에 뿌리를 내렸다고요. 농촌문화운동 지도자로서 할 일이 있다고요.
그러고는 정말로 다시 남편의 고향으로 내려갑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입니다.
신상옥의 〈상록수〉(1961)에 나오는 최은희가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구로사와 아키라의 하라 세츠코입니다.
온갖 핍박을 받아 가며 농사를 짓느라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된 하라 세츠코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단 한 편의 영화가 바로 〈내 청춘에 후회는 없다〉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 하라 세츠코가 오즈 야스지로의 하라 세츠코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제 가슴을 뻐근하게 합니다.
이제는 보기 드문 인간형 둘 - 오코우치 덴지로
이 배우를 오코우치 덴지로라고 확실히 알아보기까지는 한참이 걸렸습니다. 워낙 분장과 연기가 감쪽같아서 〈호랑이 꼬리를 밟은 사나이〉와 〈백만 냥의 항아리〉의 그를 얼른 떠올리기가 어려웠던 탓입니다.
여기서 그는 하라 세츠코의 아버지인 교토대 법학부 교수로 나옵니다.
한데, 그는 반전운동을 하는 학생들의 뜻에 동조하는 일종의 의로운 교수입니다.
모두가 전쟁을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 그와는 다른 ‘옳은 길’을 걸으려는 용기를 스승으로서 제자들한테 보여주려 노력할 줄 아는 사람이지요. 당연히 그는 제자들의 앞날을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걱정합니다.
신기한 것은 자기 딸인 하라 세츠코를 대하는 그의 태도입니다.
아무리 사상적으로 반전운동에 동조한다고 하더라도, 앞날이 험할 것이 뻔한 운동권 학생과 무모한 결혼을 하려는 자기 딸을 선선히 허락하고 포용해 줄 아버지가 세상에 흔할 까닭이 없습니다. 한데도 그는 그렇게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후지타 스스무가 옥중에서 고문을 받다가 죽었을 때 그가 친정아버지로서 딸한테 보인 태도입니다.
그는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하여 슬피 우는 딸한테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은 너의 남편이다. 너는 그 사람의 아내고. 그러니 그 사람이 지금까지 해온 일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거라. 그 사람은 일본을 전쟁에서 구하려고 목숨을 걸고 싸웠다. 너도 그 사람의 아내로서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미군정의 검열을 받아야 했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말을 딸한테 해주는 인간형을 어찌 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맥락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이는 마치 조선시대에 아버지가 시집가는 딸한테 “너는 이제 출가외인이니, 일부종사(一夫從事) 하면서,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하느니라!” 하고 엄히 이르던 모습을 떠올리게도 하는 장면입니다.
이런 인간형의 리얼리티가 얼마나 신뢰할 만한가는 둘째 문제로 치고라도, 저는 이 오코우치 덴지로한테서 〈이키루〉의 ‘헌신적인 공무원’ 시무라 다카시와 〈조용한 결투〉의 ‘인간적인 의사’ 미후네 도시로를 겹쳐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 보는 이의 가슴을 뻐근하게 만드는, 이제는 보기 힘든 인간형들 아닙니까.
따라서 〈내 청춘에 후회는 없다〉에서 오코우치 덴지로는 어떤 고귀한 가치를 위해서 기꺼이 자기 한 몸의 영달을 포기할 수 있는 인간형, 어찌 보면 매우 시대착오적이라 할 수 있는, 그야말로 보기 드문 인간형을 매우 설득력 있게 연기해 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쩌면 ‘보기 드문’이 아니라, ‘볼 수 없는’이라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후회 없는 청춘을 위하여
후회 없는 청춘―.
아무리 세상이 비루한 물질주의에 젖어 인간성을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그렇듯 어떤 가치를 위해서 청춘을 불사른 사람이라면 적어도 후회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니, “내 청춘에 후회는 없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청춘의 어느 한 시기 정도라도 그렇게 살아본 적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삶에 견주어 보면, 지금 이 시대는 참으로 비루하고 남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하루하루의 비루함과 남루함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니, 어쩌면 세상은 점점 더 고약하게 변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때는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살았는데, 지금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