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엽위신, 〈엽문〉
C20. 먹는 일을 소중히 여기는 무도인 - 엽위신, 〈엽문〉(2008)
영웅도 먹어야 한다
이인항의 〈삼국지:용의 부활〉(2008)이 두 개의 장면으로 저를 사로잡았다는 이야기는 앞서 이미 했습니다. 하나는 처음 등장한 제갈량이 아귀아귀 밥을 먹는 장면이었고, 또 하나는 조자룡이 아두 아기를 구하러 나서기에 앞서 양 볼이 터질 듯 먹을 것을 입속에 밀어 넣던 장면이었습니다.
천하의 제갈량도, 천하의 조자룡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그 두 장면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이면서, 동시에 전쟁이란 모름지기 먹는 일의 연장이라는 유구한, 그러나 적어도 영화 속에서는 대체로 가볍게 취급되어 왔던 진리를 선연하게 보여주는 잊을 수 없는 명장면들이었습니다.
식사를 존중하는 무도인
한데, 놀랍게도 〈엽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에서 엽문 역의 견자단도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둥근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합니다.
심지어 그는 그곳에 도장을 차린 류사부라는 사람이 찾아와 대련을 청하는데도 우선 식사를 마저 하겠다고, 그야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다는 듯이 웃는 얼굴로 말합니다.
류사부 또한 자기 청을 무시한다고 벌컥 화를 내거나 하지 않고, 엽사부를 존중하여 그 가족이 식사하는 동안 그들 곁에서 얌전히 앉아 기다립니다. 다소 머쓱하고 민망한 시간이지요.
보다 못한 엽문은 그에게 식사를 했느냐고 친절하게 묻고, 그가 아직이라고 답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에게 권하여 다 함께 어울려 식사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 둘 사이의 대련은 그 식사가 다 끝나고 후식으로 차까지 마신 다음에야 비로소 시작됩니다.
무예가 중심 소재인 영화에서 이런 초반 설정은 처음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갈량이나 조자룡이나 엽문이나, 다 역사 속의 실존 인물들이네요.
그래서인지, 그들이 먹는 일에 집착하는 모습이, 아니, 그들이 먹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한테는 적과 싸워 이기는 일보다 한 끼 식사를 놓치지 않는 일이 더욱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이 태도가 몹시도 매력적이면서, 동시에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처럼 먹고사는 문제가, 또는 먹는 문제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해진 시대에 이것은 정말 대수롭게 보아 넘길 장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가장이자 남편인 생계형 무도인
제 생각에 엽문은 철저한 생계형 무도인입니다.
그가 먹고사는 문제의 소중함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을 줄 아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작 한 덩이의 고구마를 얻으려고 험한 일, 천한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나쁜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또한 그의 인격과 관련하여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엽문은 배를 곯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예의 고수인 자신의 사회적 체면 따위조차 아랑곳없다는 태도입니다. 그는 무예를 연마해야 할 손으로 허드렛일을 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무예 말고는 제대로 할 줄 아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자신을,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충분히 가족을 먹여 살릴 능력이 없는 자신을 한심하게(!) 여길 줄조차 아는 위인입니다.
저는 이런 무도인을 적어도 영화에서는 본 적이 없습니다.
대개 영화 속의 주인공으로서 뛰어난 무술 솜씨를 갖춘 무도인이라면, 처자식이야 어찌 되든, 적과 혹은 라이벌과 벌이는 대결에서 이기느냐 지느냐, 그 승패의 결과에 온 신경을 다 쏟게 마련입니다.
아내가 남편의 안위를 걱정해도 그런 것쯤은 가볍게 넘겨버리고,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결투를 하기 위해 표표히 가족의 곁을 떠납니다.
무도인의 자존심과 무관한 일 앞에서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습니다. 혹은 고뇌하지 않습니다. 그러는 것만이 자기 존재의 근거라는 듯이 말이지요.
그래서 그가 대결에서 설령 승리를 거두더라도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의 처지에서 관객은 어딘가 모르게 속절없이 개운치 않은 뒷맛을 느낍니다. 그 뒷맛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저는 〈엽문〉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은 기분입니다.
아버지인 무도인
엽문은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있는 힘을 다해 일을 합니다. 동시에 몸조심을 합니다. 더불어 먹는 일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압니다.
아들이 아버지인 엽문에게 요사이 왜 훈련을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엽문은 대답합니다. 먹는 것이 적기 때문에 힘을 아끼고자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고요.
이런 대답을 엽문 같은 무술 고수의 입에서 듣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런 생각을 아들 앞에서 그는 감추지도 않고, 돌려서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먹는 일을 입에 담는 데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떳떳합니다.
저는 이런 태도가 용감하게 적과 혹은 라이벌과 대결을 벌이는 일보다, 적어도 아들 앞에서는,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승패 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아들한테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직무 유기입니다.
이 점에서 엽문은 훌륭한 무도인이기에 앞서 훌륭한 아버지의 태도를 갖춘 사람입니다.
경제난 시대에 더욱 빛나는 영웅들
체면 불고(不顧)하고, 작전 지시를 하기에 앞서 밥부터 아귀아귀 ‘처먹는’ 제갈량, 창을 들고 출정하기에 앞서 아귀아귀 먹을 것을 입 안에 처넣기부터 하는 조자룡, 처자식과 함께 오순도순 어울려 밥을 먹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하는 영춘권의 고수 엽문―.
여기에 이르니, 비로소 이들이 경제난 시대의 액션 영웅이라는 생각이 구체적인 모양새를 갖추어 떠오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경제난 시대입니다. IMF, 그 국가부도 사태 이후로 언제 호황이었던 시절이 있었던가, 싶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회복의 전망이 잘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는 중입니다.
어쨌거나 지금은 사람이 먹고사는 일에서 언제든 낙오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천하제일의 전략가 제갈량이라 할지라도, 관우와 장비도 함부로 넘보지 못할 눈부신 창 솜씨를 자랑하는 《삼국지》의 가장 스마트한 영웅 조자룡이라 할지라도, 이소룡의 스승이며 아무도 당해내지 못할 영춘권의 고수 엽문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먹어야 산다는 이 지극히 기초적이고 즉물적인 진리에서 조금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이토록 드러내놓고 강조하는 것이 어찌 이상한 일이겠습니까.
‘밥’을 중요하게 취급할 줄 아는 이런 영웅들이 저는 참 마음에 듭니다.
제갈량과 조자룡과 엽문―.
제갈량이 신기(神技)의 전략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도, 조자룡이 홀로 조조의 백만 대군을 뚫고 아두 아기를 구해오는 것도, 엽문이 가라테(唐手) 유단자들인 일본 병사들과 1대 10으로 맞붙어 당당히 이기는 것도, 그들도 먹는다는 사실, 그들도 먹어야 산다는 사실, 그들이 먹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 그들이 먹는 일의 소중함을 숨기지 않고 당당히 드러내놓고 강조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보다 더 제 가슴을 깊이 울리지는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