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3
CA61. 숀 레비, 〈데드풀과 울버린〉(2024)
마블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논리 구조를 지키려는 강박에서 이제는 벗어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닌지. 관객이 진정으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그 논리 구조를 지키려는 의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슈퍼히어로들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활약상이 아닐까. 울버린을 소환하는 데 꼭 멀티 유니버스라는 개념 또는 장치가 필요한 걸까. 그냥 느닷없이 시작하면 안 되는 걸까. 멀티 유니버스를 통해서 불러낸 울버린, 또는 데드풀은 우리가 사랑하는 그 울버린, 그 데드풀이 이미 아니지 않은가.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가 우리가 사랑하는 그 스파이더맨, 그 피터 파커가 더는 아니듯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 히어로가 아닌가. 이 경우 멀티 유니버스는 마블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블을 옥죄는 족쇄 구실을 하는 게 아닌지. 이 강박을 진작에 벗어던졌다면 ‘로건’을 이런 식으로 우스꽝스럽게 ‘파묘(破墓)’하여 ‘부관참시(剖棺斬屍)’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무리 유머라 할지라도.
CA62. 제임스 맨골드, 〈로건〉(2017)
로건이 엑스맨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선언을 하려는 복잡하고도 장엄한 빅 픽처. 엑스맨으로 살았지만, 인간으로서 죽는 울버린을 보여주기 위한 눈물겨운 분투의 서사. 이 인간 울버린, 인간 로건의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면 마블과는 이쯤에서 이별, 아니, 작별하는 게 맞지 않을까.
CA63. 김지운, 〈거미집〉(2023)
다른 모든 예술 분야를 통틀어 영화만큼 그 자체에 관한 사유를 구체적인 하나의 작품을 통하여 거듭거듭 끈질기게 반복하는 장르가 또 있을까. 하지만 ‘영화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이유에 대한 사유는 어쩐지 새로운 시도인 경우가 드문 느낌이다. 아마도 그래서 영화에 관한 영화의 매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게 아닌지. 사유가 새롭지 않으면 아무리 새로운 감독이, 새로운 배우들을 기용하여, 새로운 시대를 배경으로, 새로운 이야기의 영화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도 영화가 직업이 아닌 대부분의 관객에게 그 영화는 매력적이기 힘들지 않을까. 물론 매력적이기를 굳이 원하지 않는다면 별문제겠지만.
CA64. 베넷 밀러, 〈머니볼〉(2011)
스포츠가 인생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소리인지도 모른다. 한데도 그 소리가 들을 때마다 감동적인 것은 실제로 스포츠에서 모든 종목의 모든 경기에서 때마다 실시간으로 그걸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래드 피트가 “이러니 야구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나!” 하고 탄식하듯 내뱉는 마지막 한마디가 모든 걸 설명해 준다. 이 말에 동의하든, 동의하기 싫든,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CA65. 오기가미 나오코, 〈강변의 무코리타〉(2023)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과거를 외면할 수도, 잊을 수도, 버릴 수도, 누군가에게 떠넘길 수도 없는 것은 그 과거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규정해 주기 때문이다. 살기를 지금 당장 그만둘 생각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과거와 함께 나아가야 한다. 그의 괴로움이 계속되는 것도 그가 살기를 그만두지 않으면서도, 또는 못 하면서도 여전히 그 과거와 함께 가기를 거부하는 탓이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것과 과거를 부정하는 것은 전혀 성격이 다른 일이다.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아니, 얽매어서는 안 되겠지만, 부정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를 온 마음을 다하여 받아들이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과거를 부정하는 쓰라리고 힘겨운 시간,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과거와 함께 가기로 마음먹은 순간 그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그래서다. 그리고 이 가득한, 어딘가 슬픈 빛깔의 유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