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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Sep 06. 2024

My Cinema Aphorism_15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5

CA71. 페데 알바레즈, 에일리언 : 로물루스〉(2024)

   철학적이고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방향으로 치닫던 에일리언 시리즈를 본연의 초심(初心)으로 회귀시킨 기특함. 모든 것이 다르면서도 같다는 이 기이한 일치감. 그리고 이 일치감이 속절없이 불러일으키는 리들리 스코트의 제1편과 제임스 카메론의 제2편에 대한 향수. 물론 당연히 스물일곱 살의 케일리 스패니가 불러일으키는 서른 살 때의 시고니 위버에 대한 향수. 이렇듯 참으로 오랜만에 향수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는 제 몫을 다했다는 평가가 아깝지 않다. 


CA72. 박범수, 〈빅토리〉(2024)

   이런 스토리에 굳이 조선소 노동자 파업 소재를 끼워 넣은 이유가 무엇인지 내내 궁금했다. 언뜻 〈빌리 엘리어트〉(2001, 스티븐 달드리)가 떠오르기는 하는데, 두 영화 사이에서 의미 있는 접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왜냐하면, 파업에 얽힌 드라마가 양적으로 충분히 들어 있지 않았고, 질적으로 충분히 스토리에 녹아든 느낌이 아니었던 탓이다. 그래도 인물들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운 것은 속절없는 노릇인데, 이는 이 영화가 꼭 사반세기 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만은 아니다.


CA73. 정이삭, 〈트위스터스〉(2024)

   토네이도의 정체를 ‘파악’하려는 그들이 어째서 과학자처럼 보이지 않는지, 그게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이상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자원봉사자나 구조대처럼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점에서는 아무래도 얀 드봉의 〈트위스터〉(1996) 쪽이 여러 가지로 조금 더 성숙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다. 가장 유감스러운 점은 지금까지 내가 본 H. G. 웰스의 원작소설 《우주전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모든 영화와 드라마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TV드라마 〈우주전쟁〉(2019)의 여주(女主)인 데이지 에드가 존스의 매력 또는 연기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것.


CA74. 추창민, 〈행복의 나라〉(2024)

   이 영화에서 조정석이 그려낸 변호인 상은 〈변호인〉(2013, 양우석)의 송강호와는 또 다른 면에서 의미 있는 성취의 하나가 아닌지. 이선균이 그를 ‘진짜 변호사’라고 규정한 것은 그래서 이중적이다. 영화 내적으로, 그리고 영화 외적으로. 다만 이선균이 사형 판결을 받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므로, 이 바꿀 수 없는 결말을 좇아 스토리를 만들어가야 하는 당위 앞에서 조정석의 동분서주하는 노력과 유재명(전상두)의 잔인무도함이 다소 억지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양해할 만한 한계 안에서 속절없는 노릇이다.


CA75. 미셸 공드리, 〈공드리의 솔루션북〉(2023)

   영화감독에 관한 영화, 또는 영화 만들기에 관한 영화에서 핵심 등장인물인 감독 캐릭터는 대개, 아니, 거의 어김없이 망상과 지질함 사이를 오간다. 이걸 코미디로 그려냈다는 것이 공드리의 재능과 성격이 지닌 특유의 어떠함을 설명해 준다. 유머라기에는 다소 슬프고, 욕망이라기에는 다소 초라하고, 예술이라기에는 다소 딱하다. 이 모든 것을 하나의 과정으로서 빠짐없이 거치지 않으면 완성된 한 편의 영화라는 결말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운명이라면 운명일 테지만, 감독 스스로 부끄럽든 수치스럽든 절망스럽든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해서 상영하는 데까지 이르렀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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