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6
CA76. 이준익, 〈자산어보〉(2021)
이 눈부신 영화에서 설경구가 《대학》의 첫대목을 그렇게나 유려하게 읽어놓고는, 정작 《논어》 〈학이편〉의 ‘유붕(有朋) 자원방래(自遠方來) 불역낙호(不亦樂乎)’에서 ‘자원방래’를 ‘자/원방래’로 끊어 읽지 않고, ‘자원/방래’로 끊어 읽은 것은 거의 유일하게 눈에 띄는, 아니, 귀에 들리는 ‘옥에(의) 티’다.
CA77. 강우석, 〈고산자, 대동여지도〉(2016)
지도 제작이 나라를 위한 것인지,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한 인간의 이타주의적인 본성의 발로인지, 이도 아니라면 한 개인이 지닌 성격의 광기스러움이 빚어낸 산물인지를 구별하기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이 구별은 대개 실패한다. 아니면, 곡해된다. 이 실패와 곡해의 배경에는 우리의 오래된 오해 한 가지가 도사리고 있다. 나랏일 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업으로 나랏일을 하는 것일 뿐, 진심으로 나라를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오해. 이것이 아주 심한 편견이거나 오해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여간해서는 떨쳐내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CA78. 김한민, 〈노량 : 죽음의 바다〉(2023)
노량이 최종적인 승전(勝戰) 또는 종전(終戰)의 바다가 되지 않고 죽음의 바다가 된 것은 조선을 위해서, 아니, 조선의 백성을 위해서 좋았던 일이었을까, 나빴던 일이었을까. 이순신의 역할을 최민식과 박해일과 김윤석이 번갈아 차례로 맡은 것을 이순신의 각기 다른 면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 아마 이 3부작을 위한, 또는 이 3부작의 캐스팅에 대한 최선의 변명이지 않을까.
CA79. 라이언 쿠글러,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2022)
블랙 팬서, 곧 채드윅 보즈먼의 죽음이 극적 필연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고, 적어도 제작진에게는 전혀 예기치 못하게 느닷없는 사태였다는 점이 블랙 팬서를 여성으로, 정확히는 그의 여동생으로 바꾼 일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아마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쪽에서 가장 고민이 되는 점이 바로 이 스토리 상의 자연스러운 연결 부위를 찾는, 혹은 결정하는 것이었을 테다. 하지만 채드윅 보즈먼에 대한 향수를 처리하는 문제는 끝까지 남는다.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역의 배우들이 교체되는 과정에 그전 배우에 대한 향수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점이 이 경우에는 효과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까닭은 역시 블랙 팬서의 매력, 또는 채드윅 보즈먼의 매력이 007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탓이 아닌지.
CA80. 다니엘 콴 & 다니엘 쉐이너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이 영화의 경우는 원제보다는 ‘천마가 하늘을 달려간다’라는 의미의 ‘천마행공(天馬行空)’이라는 말이 이 영화 특유의 자유분방하고 발랄하며 다이내믹한 상상력을 더 적절하게 표현한다는 생각이 든다. 양자경의 진가는 일찍이 〈예스 마담〉(1985, 원규) 시리즈에서 벌써 알아봤지만, 〈와호장룡〉(2000, 이안)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불필요하게 많이 걸렸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양자경이 이 영화에서 보여준 눈부시게 다채로운 연기, 또는 연기력보다 〈와호장룡〉에서 보여준 ‘품위’가 나는 더 귀하고, 아름답고,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