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8
CA86. 김용화, 〈더 문〉(2023)
이 영화를 보고 확실히 알았다. SF영화는 비주얼이 문제가 아니라, 과학자든 우주비행사든, 주인공이 기본적으로 매우 아카데믹하고 이성적인 인물이어야 한다는 점. 그래야 감정이입이 일어난다. 요컨대, 과학자라면 더없이 과학자다워야 하고, 우주비행사라면 더없이 우주비행사다워야 한다는 것. 이상하게도 다른 장르의 영화에서는 이 원리가 꼭 백 퍼센트의 비중으로 관철되지는 않는다.
CA87. 황천인, 〈상견니〉(2022)
그런 초자연적인, 또는 양자역학적인 일이 기어이, 마침내 벌어졌다면, 그것은 반드시 관객을 안심시켜 주는 결말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의 재확인, 또는 새삼스러운 환기(喚起). 왜 ‘인연(因緣)’이라는 말에 ‘인할 인(因)’자가 들어가 있겠는가. 반드시 그러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그런 결말에 가 닿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반드시 그 일은 이러한 종착점에 이르러야만 한다는 것.
CA88. 페데 알바레즈, 〈맨 인 더 다크〉(2016)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왜 긴장을 푸는가?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거북함과 불편함, 또는 긴장감. 하지만 그 사람은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다. 오감(五感)을 모두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그 사람의 지각(知覺) 활동은, 누구나 그러하듯이, 24시간 가동(可動) 상태에 있는 것이다. 지각하고 있는 한 그는 보기도 하는 것이다. 이 점을 잊는 순간 누구나 실수를 하게 되어 있다. 이 실수가 파국의 빌미가 된다.
CA89. 이상용, 〈범죄도시2〉(2022)
트릴로지를 포함하여 시리즈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제2편이라는 사실을 또다시 증명해 준 영화. 손석구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몰락한 것은 신체 능력에서 마동석에게 밀린 탓이 아니다. 그에게 사업가의 자질이 부족했거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이 모이는, 또는 돈을 모을 수 있는 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아니면, 그는 그 이상의 돈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여 그 지점에서 멈추었고, 또는 멈추고 말았고, 멈추는 순간 그는 멈추지 않는 누군가에게 덜미를 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몰락은 자초한 것이다.
CA90. 제임스 맨골드, 〈인디아나 존스 : 운명의 다이얼〉(2023)
내 시간대가 아닌 곳에서 영원히 머무르려면 내 시간대에 대한, 또는 내 시간대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미련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는 자기 시간대의 세상에 대한 미련이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이다. 단순하게 줄여서 말하자면, 그는 우리 곁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그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우리의 곁을. 이것이 그가 돌아온 단 하나의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