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9
CA91. 크지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세 가지 색 : 화이트〉(1994)
드라마 〈굿 파트너〉에서 이혼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관계의 시작이라고 장나라가 이혼에 대하여 내린 정의는 옳다. ‘그들’은, ‘그 부부’는 이혼한 뒤에 비로소 진정한 관계의 망 속으로 진입한다. 이혼하기 전보다 이혼한 뒤 그들이 더욱 부부다워지는 것이야말로 모든 관계의 본질적인 아이러니가 아닐까.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먼저 그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적어도 영화는 그렇다고 말한다. 그가 변하면 그녀도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관계는 완전히 인멸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그 관계를 이루는 쌍방이 서로에 대한 영향력을 여전히 지니고 있으며, 나아가 지속적으로 미치고 있다는 뜻이다. 또는, 서로 그 관계를 아직은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려는 의사(意思)를 아주 버리지 않고, 여전히 품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 관계를 위해서 자신이 감옥에 갇히는 사태를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CA92. 크지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세 가지 색 : 레드〉(1994)
형사 재판이든, 민사 재판이든, 재판 결과가 상식이나 일반적인 통념 또는 감정의 범위를 곧잘 벗어나는 것은 그만큼 윤리적으로 어느 쪽이 옳은가를, 또는 얼마나 더 옳고, 얼마나 더 그른지를 정량적으로 결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터이다. 그래도 느낌이라는 것이 있다. 직감이라고 해도 좋다. 어쩐지 옳은 것 같지 않은 느낌, 동시에 어쩐지 옳은 것 같은 느낌. 이 미묘한 느낌이 매우 무서운 것임을 지속해서 보여준 감독이 바로 키에슬로프스키다. 여객선 침몰의 대참사 속에서 살아남은 일곱 명으로 감독은 이 윤리적 편차의 엄정함을 거의 심판자의 엄중함으로 보여주고야 만다. 이것이 세 가지 색 삼부작에서 이 영화가 정점인 이유다.
CA93. 류승완, 〈베테랑2〉(2024)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는 정해인의 범행 동기다. 어째서 그에 대해서 영화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 걸까. 다음 편을 위한 포석이라는 변명은 궁색하다. 사적 보복을 공적으로 응징하는 이야기는 적어도 영화 속에서는 진부하다. 그 사적 보복의 대상이 공공의 적일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런 영화에서 사적 보복의 발생 원인에 대한 천착은 왜 늘 부족할까. 덩달아 공적 보복이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경우에 대한 성찰도 늘 모자란다. 정해인의 체포는 관객의 카타르시스에 이렇다 할 이바지를 하지 못한다. 쿠키영상에서 전해지는 정해인의 탈출 소식이 관객의 카타르시스에 이바지하는 바가 더 큰 이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째서 〈범죄도시〉 시리즈보다 〈베테랑〉 시리즈가 한결 더 호들갑스럽고 소란스럽고 조급한 느낌일까. 활극에 대한 강박의 결과일까.
CA94. 안드레스 무시에티, 〈플래시〉(2023)
DC의 플래시를 볼 때마다 마블의 퀵 실버가 떠오르는 것은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 브라이언 싱어)와 〈엑스맨 : 아포칼립스〉(2016, 브라이언 싱어)의 바로 ‘그’ 장면들 때문이다. 이것은 DC와 마블의 차이일까, 아니면, 감독 고유의 연출 감각이 빚어낸 차이일까. 플래시가 배트맨과 엮이는 한 그 특유의 발랄함을 얼마간 잃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태일 것이다. 이 때문에 그를 볼 때마다 나는 안타깝다. 플래시 캐릭터를 그답게 살리려면 그를 아무와도 엮지 않고 단독 주인공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CA95. 제임스 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Volume 3〉(2023)
외모만 같은 다른 존재―가모라(!)―가 등장하는 멀티 유니버스 서사에, 로켓이 자기 정체성―라쿤/너구리(!)―을 비로소 깨닫는 서사를 엮어놓지 않았다면 스파이더맨의 경우와 비슷한 실망과 허전함이 여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덕에 〈스타워즈 : 제다이의 귀환〉(리처드 마퀀드, 1983)을 떠오르게 하는 마지막의 행복한 축제 장면이 수긍할 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