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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Sep 03. 2024

My Cinema Aphorism_14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4

CA66. 김한결, 〈파일럿〉(2024)

   남자가 여장을 하거나, 여자가 남장을 함으로써 새롭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상상력은 시드니 폴락의 〈투씨〉(1983) 이후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더는 나아질 수 없는 상상 또는 상상력의 영역에 속하는 모양이다. 다시 말하면, 이는 남녀 관계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건 운명적으로 변할 수 없는 것일까. 이런 소재의 영화가 어째서 코미디로 분류되는가를, 아니, 어째서 코미디 장르로 만드는가를 찬찬히 생각해 보면, 혹 그 까닭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CA67. 닐 버거, 〈리미트리스〉(2011)

   우리가 우리 두뇌를 일부밖에 쓰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그 오류가 증명된, 참으로 오래된 착각이요 오해요 미신이다. 한데도 우리 두뇌를 인위적인 방법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 또는 환상이 질기도록 계속되며, 이런 테마의 이야기가 거듭거듭 만들어지는 것은 우리 자신의 게으름을 물리적인 한계 탓으로 돌리려는 비겁한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 아닌지. 아니면, 인간의 두뇌에 대한 신비주의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탓일까.     


CA68. 오승욱, 〈리볼버〉(2024)

   내가 받을 돈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것은 전도연의 행동이 복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계약의 이행에 대한 촉구다. 말하자면 비즈니스다. 그러니까 거기에서는 윤리적인 차원의 응징이라는 테마가 처음부터 배제되어 있는 셈이다. 그래서 사찰과 그 주변 공간에서 벌어진 마지막 활극이 코미디가 된 것이고, 필요 이상으로 길어진 것이다.     


CA69. 니콜라스 빈딩 레픈, 〈드라이브〉(2011)

   영화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엘리베이터 시퀀스로는 4분 동안 계속되는 저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2014, 앤서니 루소·조 루소)의 것이나, “드루와! 드루와!”라는 명대사를 남긴 저 〈신세계〉(2013, 박훈정)의 것을 꼽을 수 있겠지만, 그 둘 다 이 영화의 엘리베이터 시퀀스가 담고 있는 긴장감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내 느낌이다. 심지어 이 긴장감은 거의 명상적이기까지 하다. 남자가 끔찍한 폭력이라는 방법으로 여자를 지켜주고 보호해 줄 때 여자는 이 보호가 주는 안정감과 폭력이 주는 공포감 사이에서 어느 쪽을 더 중시할까. 또는, 어느 쪽을 더 무겁게 느낄까. 더욱이 그 남자는 그녀와 알게 된 것을 자기 인생 최고의 사건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다.     


CA70. 박이웅, 〈불도저에 탄 소녀〉(2022)

   누구든 지금까지 김혜윤을 하이틴 로맨스 드라마의 주인공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면, 이 영화를 통하여 그 생각을 고쳐야만 하지 않을까. 여자 판 〈똥파리〉(2009, 양익준)라는 느낌. 아니, 거칠다는 느낌으로는 양익준 쪽이지만, 날카롭다는 느낌으로는 김혜윤 쪽이다. 분노에 찬 소녀를, 또는 소녀의 분노를 불도저와, 또는 불도저라는 물성과 물리적으로 연결한 발상의 도저함과 참신함, 그리고 강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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