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키 사토시, 〈텐텐〉
C27. 배회 영화, 소요 무비 – 미키 사토시, 〈텐텐(轉轉)〉(2007)
전전, 배회, 소요, 산책, 여행
이런 영화도 로드무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제목 ‘전전(轉轉)’은 말 그대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는 뜻입니다. 이걸 굳이 ‘텐텐’이라고 일본어 발음 그대로 표기하니, 맛이 좀 덜하지요?
그러니까 뚜렷한 목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작정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어슬렁거리는 것이 텐텐, 전전입니다. 일종의 ‘배회(徘徊)’지요.
조금 더 고상하게 표현하면 ‘소요(逍遙)’라고 하면 될까요.
가장 일반적으로는 ‘산책(散策)’이라는 말을 쓸 법합니다.
물론 ‘전전’이라고 하니 조금은 궁상맞은 뉘앙스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흔히들 ‘셋방을 전전하며……’ 같은 표현을 쓰니까요. 곧, 어떻게 보아도 ‘여행’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강렬하지 않음의 매력
이런 영화를 만나는 감흥은 참 유별납니다. 강렬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정반대지요. 그러니까 전혀 강렬하지 않아서 매력적인 것입니다.
더욱이 주연은 오다기리 조에 감독은 영화 〈인 더 풀〉(2005)과 TV드라마 〈시효경찰〉(2006)의 미키 사토시입니다.
물론 영화 〈인 더 풀〉은 오쿠다 히데오가 쓴 동명의 원작소설에 견주어 다소 실망스러웠지요. 그래도 그 영화에 나오는 오다기리 조는 봐줄 만했습니다. 실은 봐줄 만해서 그 열연이 더욱 애처로웠지만요.
어쨌거나, 이 영화는 미간에 세로 주름을 깊게 새겨놓는 무거운 분위기와는 아무 친연관계가 없습니다. 빔 벤더스가 일가를 이루어놓은 자아 성찰적이고 철학적인 로드무비와도 무관하고요.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저는 ‘배회 영화’나 ‘소요 무비’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영화에서 ‘가냘픈’ 오다기리 조는 ‘듬직한’ 미우라 토모카즈와 나름 절묘한 커플을 이루어 그야말로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닙니다.
이 대조적 이미지의 피지컬을 지닌 두 사내가 감행하는 ‘소요’를 싱긋 미소 띤 얼굴로 ‘구경’하다가 저는 문득 도심지가 삭막한 것은 바로 이런 ‘소요’가 없거나 극히 드물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덜컥 사로잡혔습니다.
도심지에 대한 취향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저는 도심지를 싫어합니다. 아니, 싫어한다기보다는 버거워한다고 하는 편이 더 적확하겠네요. 특히 출근길의 도심지는 그야말로 끔찍합니다.
단순히 사람들이 바삐 걷는다는 그 행위의 전체주의적인 통일성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 걷는다는 행위에는 대부분 뚜렷한 목적지가 있습니다. 또는 그 목적지를 강렬히 지향하는 서두름이 있지요.
그 서두름이 끔찍하다는 것입니다.
더러는 백수나 걸인의, 또는 국내외 관광객의 이렇다 할 목적지를 지향하지 않는 ‘소요’의 행위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도심지 살풍경의 끔찍함을 덜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한데, 이 영화에는 바로 그 끔찍함을 덜어내는 소요의 한가로움이 있습니다. 그것이 저를 은근히 매혹시킵니다.
한가로운 소요의 매력
흡사 버디무비의 두 주인공처럼 함께 어울려 소요하는 이 두 사내 오다기리 조와 미우라 토모카즈는 그 한가로움을 꽤나 부럽게 체현해 보입니다. 저도 그들과 어울려 그들처럼 소요해보고 싶을 만큼요.
여기 한번 가볼까, 저기 한번 가볼까…….
어디로 가든 상관없습니다. 발길 닿는 대로 그저 가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지요. 아니, 가는 것처럼 보이는 어슬렁거림이 중요합니다.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가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반드시 당도해야만 하는 목적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려는 곳은 반드시 도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목적지가 아닙니다.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 심지어 못 가도 그만입니다.
그들이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는 것도 그것이 반드시 도착해야만 하는 목적지라서가 아닙니다. 전혀 아무 이유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그저 한번 가보자는 것뿐입니다.
어슬렁거림에 대한 기호(嗜好)
여기서 더욱 매력적인 것은 그 한가로운 어슬렁거림을 그들이 전혀 따분해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 따분해하지 않음, 불안해하지 않음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아주 자족적(自足的)인 어슬렁거림이지요.
그래서 문득 결론을 내리듯 이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도심지의 살풍경은 바로 그런 ‘소요’가 없거나 턱없이 적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요.
도시라도 그 변두리나 지방 소도시의 거리를 소요하는 것은 별로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습니다. 누가 그렇게 소요하는 사람을 삐딱한 시선으로 쳐다보지도 않고요
오히려 목적지를 향해서 바삐 걷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겠습니까. 뭔가 켕기는 것이 있어 어딘가로 빨리 도망치려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을 테고요.
반면, 아스팔트 대로가 종횡으로 얽혀 있고, 차량 통행이 하루 종일 체증(滯症)을 빚는 도시의 중심가에서는 그 한가운데를 느리게 어슬렁거리는 사람이야말로 금세 남들 눈에 튀어 보이지 않을까요. 부랑자처럼 보일 수도 있고요.
서두름? 한가로움!
이 두 가지 경우에서 그 각각의 사람이 혹 경찰의 손으로 연행되더라도 그들이 받는 의심의 내용은 전혀 다를 것입니다. 도심지의 거리에서 아무 목적 없이 어슬렁거리는 사람은 ‘죄인’입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는 죄를 짓는 사람―.
오다기리 조의 어딘가 나사가 한둘쯤 빠진 듯한 멍청한 표정과 그지없이 정겨운 그 후줄근한 몰골은 오로지 이 영화를 위한 것인데, 문자 그대로 ‘안성맞춤’입니다.
목적지를 향하는 서두름보다는 소요의 한가로움이 사람을 오히려 더 불안하게 하는 것이 아마도 이 시대의 정서―여전히 기회만 있으면 강압적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 드는 저 ‘열심히 일하자’는 모토 또는 이데올로기의 마수!―일진대, 이 영화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듯합니다.
이 정반대의 주장이 저는 은근히, 참 마음에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