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마시타 노부히로,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C28. 시골, 바다, 교복, 기차, 입맞춤 – 야마시타 노부히로,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2007)
이 영화의 키워드는 다섯 가지입니다.
#1. 시골, 또는 어슬렁거림
교복 차림의 시골 소녀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채 오도카니 서 있습니다.
소녀 앞으로 수많은 사람이 이 방향 저 방향으로 바삐 오갑니다.
마치 거대한 물결이 마구 뒤섞이며 흘러가는 것 같지요.
사나운 기세입니다.
소녀는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웬 사람이 이렇게 많지?’
‘다들 어디를 가는 거지?’
‘왜 이렇게 서둘러 가고들 있지?’
바로 이것이 도시(都市)입니다.
바야흐로 소녀는 도시와 처음 맞닥뜨리는 중입니다. 그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지요. 당연합니다. 그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시골에서 그와 같은 무지막지한 생활의 양태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소녀는 이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듯한,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조급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왜, 여름에 폭우가 쏟아져 물난리가 났을 때 무시무시한 기세로 콸콸 흘러가는 강물을 어딘가 위에서 내려다보노라면 자기도 모르게 거기에 풍덩 빠져들 것만 같은 아찔한 기분에 휩싸이지 않습니까.
그처럼 이 시골 소녀 또한 자기도 모르게 그 거대한 인파 속으로 슬쩍 휩쓸려 들어갈 것만 같은 상태인 것이지요. 그 순간,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 또는 낭패스러운 마음이 소녀의 얼굴에는 그대로 다 드러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달리 보면 애처롭기도 합니다.
저는 그러는 그 시골 소녀를 보면서 왠지 ‘아, 저러면 안 되는데……’ 하는 안타까운 심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까닭 모르게 조마조마해졌지요.
이 영화의 ‘어떤’ 매력에 덜컥 사로잡힌 것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배회(徘徊) 영화’나 ‘소요(逍遙) 무비’라는 명칭으로 규정하는 미키 사토시의 〈텐텐(전전)〉(2007)을 감명 깊게 보았던 것은 바로 그런, 대도시의 중심지에서 늘 벌어지는 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인파의 살풍경(殺風景)과는 정반대인, 참으로 ‘시골스러운’ 그 특유의 한가로운 어슬렁거림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여유로운 소요가 삶 그 자체가 되어 있는 한 시골 소녀가 어느 날 갑자기 대도시 도쿄의 중심가에 와 있습니다. 그것도 얼른 헤아리기도 쉽지 않을 만큼 수많은 노선이 한데 얽히고설키는 전철역입니다.
그곳을 파도처럼 쉴 새 없이 밀려가고 밀려오는 수많은 인파를 앞에 두고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는 표정으로 오도카니 서 있는 한 시골 소녀―.
바로 그 장면에서 저는 문득 ‘저 소녀가 〈텐텐〉의 오다기리 조를 만나게 된다면?’ 하고 속절없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이 가상의 만남, 이 상상의 겹침이 순간 문득 아주 선명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로 제 눈앞에 환영처럼 떠올랐지요.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바로 그 한가로운 어슬렁거림이라는 삶의 패턴이 작품 전체의 주제가 되어 있는 영화입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그 어슬렁거림으로 거의 빈틈없이 꽉 차 있습니다.
〈텐텐〉에서처럼 도시에 억지로 심어놓아 아무래도 얼마간 어색한 느낌이 나는 인위적인 어슬렁거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진짜배기 어슬렁거림입니다. 충분한 매혹의 조건이지요.
#2. 바다
일본 영화 속의 바다는 유난히 매력적입니다. 제 생각에는 아마도 세계에서 일본의 영화감독들이 바다를 가장 솜씨 좋게 찍지 않나 싶은 정도입니다.
기타노 다케시는 그 가운데서도 발군이지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1991), 〈소나티네〉(1993), 〈하나비〉(1997)에서의 바다는 얼마나 매혹적이었습니까.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1949)과 〈동경 이야기〉(1953)의 바다가 있습니다. 오즈 야스지로의 바다는 또 얼마나 서정적입니까. 그것은 슬픔의 바다, 서글픔의 바다, 허무함의 바다, 무상(無常)의 바다입니다. 역시, 일본이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이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같은 섬나라인 영국의 영화들에서 저는 매혹적인 바다의 풍경을 접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영국 영화 속 바다는 보는 사람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폭풍우가 몰아치거나, 아니면 어둠 속에서 불행한 사건, 무시무시한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요 공간이지요. 아무래도 매혹적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폭풍의 언덕》(에밀리 브론테)의 나라답게, 영국영화에서 눈에 띄는 매력의 대상은 역시 ‘언덕’입니다.
사면까지는 아니지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 영화에 나오는 바다도 매혹적인 사례는 그리 흔치는 않은 것 같습니다.
배창호의 〈기쁜 우리 젊은날〉(1987)에서 신혼여행을 간 안성기와 황신혜가 노란 우산을 받쳐 쓰고 나란히 앉아 있었던 그 제주도의 평화로운 해변은 잊을 수 없는 이미지로 남아 있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바다 그 자체의 매혹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영화 속의 바다는 정서적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말 그대로의 ‘매력’이 있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렇습니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에 나오는 그 시골 마을의 앞바다는 참 소박하지요.
〈맘마미아!〉(2008, 필리다 로이드)의 그리스 앞바다인 저 눈이 부시도록 맑은 지중해도 아름답기는 하지만, 일본 영화 속의 바다만큼 정서적으로 매혹적이지는 않습니다.
기어코 하나만 선택하라면, 저는 역시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의 자그마한 시골 바다 쪽입니다. 그 시골 바다에서라면 마음 놓고 즐겁게 뛰어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맘마미아!〉의 바다는 눈부시게 찬란하기는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역시나 다소 부담스럽거든요.
#3. 교복
아마 ‘교복의 정서’라는 것이 있다면, 이 점에서 일본 영화는 독보적일 것입니다.
이와이 슌지는 그 가운데서도 발군이지요. 〈러브 레터〉(1995)도 얼마간 그렇지만, 〈하나와 앨리스〉(2004)와 〈릴리슈슈의 모든 것〉(2001)은 그야말로 ‘교복의 영화’입니다.
‘사복의 정서’라는 것이 있다면 아마 부끄러운 나머지 ‘교복의 정서’ 뒤에 꼭꼭 숨은 채 나오지 않으려 하지 않을까요. 아니, 정서라고 할 것도 없지요. 그것은 그냥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일본 영화 속에 교복이 등장하면, 그러니까 10대 소년 소녀들이 교복을 입고 등장하기만 하면, 참 신기하게도 갑자기 이상하리만큼 진하고 깊은 정서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듭니다. 물론 학폭 소재의 영화는 예외지만요.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도 기본적으로는 교복의 영화입니다. 중학생들의 이야기니까요. 그것도 전교생이 여섯 명밖에 안 되는 작은 시골 마을의 학교입니다.
산들바람이 어울리는 마을, 산들바람이 어울리는 학교, 산들바람이 어울리는 교복, 산들바람이 어울리는 치맛자락입니다.
여기에 도쿄에서 잘생긴 남학생이 전학을 옵니다. 벌써 빤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요? 물론, 당연히, 빤합니다.
하지만 빤하기에 아름답습니다. 이처럼 빤하기에 아름다운 것은 ‘교복의 영화’만이 지니는 신기한 특장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소녀와 소년의 조합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들은 둘 다 졸업반입니다. 아니, 이 둘만이 졸업반 학생입니다.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4. 기차
이 단 둘만의 졸업반 학생인 소녀와 소년은 이제 세 명(!)의 선생님과 함께 도쿄로 중학 시절의 마지막 여행을 떠납니다. 일종의 졸업여행이지요.
학생 둘에 교사 셋입니다. 인솔 교사가 학생보다 많은 희한한 풍경입니다.
게다가 그것은 동시에 소녀와 소년이 고등학교에 시험을 치러 가고, 또 합격발표를 보러 가는 여행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여행 아닌 여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한데, 그것이 제게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로 기차 때문입니다.
일본 영화 속의 기차는 어쩌면 시골보다도, 바다보다도, 교복보다도 더 서정적입니다.
〈철도원〉(1999, 후루하타 야스오)의 그 희디흰 설국(雪國) 풍경을 뚫고 다가오고 또 멀어져 가던 새까만 기차도 잊기 힘들지만, 일본 영화 속의 한 량짜리, 또는 두 량짜리의 앙증맞은 기차들이 시골의 푸른 들판을 가만히 지나가는 광경은, 이제는 거의 진부하리만큼의 클리셰가 되어 있는 형편인데도, 여전히 볼 때마다 제 속에 아련한 정서의 울림을 어김없이 자아냅니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의 두 소년 소녀가 나란히 앉아 손을 맞잡은 채 장차 입학할 고등학교를 향해서 나아가는 기차 속 풍경을 보다가 저는 속절없이 또 문득 〈초속 5센티미터〉(2007, 신카이 마코토)의 그 쓸쓸하고, 춥고, 외롭고, 고독한,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기차를 떠올렸습니다.
어린 시절에 그런 ‘작은’ 기차를 타보는 경험은 아마 누구한테나 평생토록 잊기 힘든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요. 그런 것이야말로 추억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풍경이 아니겠습니까.
#5. 입맞춤
키스와 입맞춤은, 당연히, 다르지요.
이 영화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에서 소녀가 소년에게 한 것은, 당연히, 키스가 아니라 입맞춤입니다. 키스의 진한 정서가 배어들기에 그것은 너무나 ‘입맞춤’스럽습니다. 입맞춤이기에 아름답습니다.
소녀는 소년에게 입맞춤을 한 다음 가만히 내뱉듯 말합니다.
“에이, 뭐 이래. 별 거 아니잖아.”
소년은 소녀의 거듭되는 입맞춤을 귀찮다는 듯 밀어내며 나직이 말합니다.
“네게는 사랑이 없어.”
아마 언젠가 뒷날에 그들은 진짜 키스라는 것을 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중학생 시절의 그 처음이자 마지막의 설익은 입맞춤을 회상하며 친구들한테 떠벌리듯 이렇게 털어놓을지도 모릅니다.
“난 첫 키스를 중학교 때 했거든.”
그렇게 그들은 그들만의 통과의례를 거쳐 고등학생이 됩니다. 그 성장의 과정이 가슴을 적십니다.
그들은 유난을 떨지 않습니다. 참 중학생답습니다.
세월이 좀 더 흐르면 아마 그들이 다녔던 중학교는 폐교되어 없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추억은 고스란히 남겠지요.
그렇습니다. 바로 이 남는다는 것이야말로 추억의 힘일 것입니다. 아무도, 그 무엇도 이 추억의 힘을 당해내지는 못합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바로 이 추억의 정서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깊이깊이 자극합니다.
머무를 수만 있다면 언제까지나 머무르고 싶은 시공간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