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23
CA111. 데이빗 로워리, 〈고스트 스토리〉(2017)
결혼식에서 울려 퍼지는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말의 엄정함. 다시 말하면, 이는 죽음이 갈라놓은 사랑은 아무리 오랜 기다림으로도 다시 맺을 수 없다는 선언이다. 그(케이시 애플렉)는 기다린다, 하염없이. 죽음 뒤에도. 더는 기다릴 수 없게 된 그녀(루니 마라)를. 하지만 그 기다림은 기약 없는, 아니, 기약을 허락하지 않는 기다림이다. 그런데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가혹한 기다림이다. 가혹한데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죽음보다 더 가차 없다. 그가 마침내 자유로워지려면 사랑하기를 그만두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장 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사랑을 그만두는 일이다. 사랑을 그만두는 것은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이걸 아는 자에게만 죽음은 안식일 수 있다. 그러니까 사랑을 그만두지 못하는 사람은 죽어서도 편할 수 없다. 그러니, 아, 얼마나 공포스러운가. 죽음은, 아니, 사랑은.
CA112. 호소다 마모루,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
그녀가 하늘을 날 때―그렇다. 달리거나 구르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분명히 하늘을 난다!―우리는 모두 그녀와 함께 하늘을 난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아니,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을 가차 없이 끌어와 이 자리에 다시 내려놓는다. 그 다이내믹함이 후련하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시간을 ‘산다(生)’. 이 애니는 바로 그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를 보여준다. 동시에 그게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애니의 강점이다. 사랑이 소중함은 바로 그 위험성의 자각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놓치지 말아야 한다. 또는, 놓쳤더라도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시간이 우리에게 강제하는 한계는 기다림으로 극복할 수 있으니까. 그는 고백한다. 미래에서 기다리겠노라고. 이것이 참 아름다운 고백인 것은 그 미래란 곧 현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만남이 기약되어 있는 기다림이다.
CA113. 존 카니, 〈원스〉(2007)
영화를 위한 음악이 있고, 음악을 위한 영화가 있다. 〈원스〉는 후자 쪽이 아닐까. 음악을 듣기 위해서 영화를 보는 흔치 않은 체험.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와 음악이 서로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느낌은 또 아니다. 이 영화의 신사적인 결말이 안일하거나 안이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 나아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체험의 성질이 조장한 결과가 아닌지.
CA114. 필 모리슨, 〈준벅〉(2005)
종교가 ‘그런’ 삶의 현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있을 수 있고, 삶의 현장이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을 수 있다. 이렇거나 저렇거나, 중요한 것은 가족이란 어느 정도는 판타지라는 사실의 자각이다. 이 자각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에게 가족은 언제까지나 지옥이지 않을까. 이 영화 〈준벅〉은 바로 그 아프고 엄정한 자각에 관객을 도달시키기 위하여 러닝 타임을 고스란히, 아낌없이 소비한다.
CA115. 숀 앨리스, 〈캐쉬백〉(2006)
〈은하해방전선〉(2007, 윤성호)에 2퍼센트 모자란 것이 바로 〈캐쉬백〉의 집중력이 아닌지. 이 영화의 강점은 한 가지 주제를 향하여 줄기차게 달음질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은하해방전선〉의 전략에 비추어보면 약점일 수도 있다. 동전의 양면이다. 〈은하해방전선〉의 산만한 매력과 〈캐쉬백〉의 집중하는 매력의 차이. 이 솔직한 고백의 질주가 이 영화의 강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