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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Oct 10. 2024

P25. 아직 가지 않은 길은 아름답다.

  - 노향림,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P25. 아직 가지 않은 길은 아름답다. – 노향림,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창작과비평사 창비시선 180)     


   ‘아름답다’라는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길이

   아름다운 것은,

   또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시인의 말대로

   ‘아직 가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니까요.

   시인은 한마디

   더

   합니다.

   ‘누구든지 잠 못 이루며 그 길을 바라보리라.’라고요.

   왜요?

   왜 잠을

   못 이루면서까지

   그 길을

   바라보는 것일까요?

   그야,

   아름다우니까요.

   아름다울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정말

   그러할까요?

   가보지도 않은 길을

   아름답다고 여기며

   밤잠을 못 이루면서까지

   기어이

   바라보려는 것은

   지금 여기의

   이 길이

   아름답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인은 알려줍니다.

   지금 이곳의

   이 길이

   어떤 길인가를요.

   ‘누군가 잃어버린 꿈들이 얼굴 없는 돌로 박혀 울고 있는 곳’이라고요.

   ‘잃어버린 꿈들’이라는

   시인의 말이

   가슴을 아프게

   저미고 듭니다.

   그래서

   시인의 말대로

   ‘길은 서로에게 닿았다가 슬쩍 비켜서

   저 좋을 대로,

   저 좋은 곳으로

   가버리는 것일

   겁니다.

   그렇게

   어긋나는

   길을

   걸어본 시인이기에

   이렇게

   고백하는 것일

   테지요.

   ‘갈곳 없는 하루가 아득할 때가 있다.’라고요.

   왜 아니겠습니까.

   길이

   어긋나고 말았으니,

   갈곳이 있을 턱이

   없지요.

   그렇게 어긋나는 길이,

   그렇게 어긋나는 길의

   체험이

   얼마나 만연했으면

   시인은 우리 시대를

   이렇게 가차 없이

   규정하고 맙니다.

   ‘부드러운 흙조차 믿지 않는 시대’라고요.

   아,

   끔찍합니다.

   ‘부드러운 흙’마저

   못 믿을 세상이라니요!

   그런 딱한

   세상이기에

   시인과 같은

   마음을 지닌

   그 누군가에 대해서

   시인은 이렇게

   아는 체를

   하는 것이겠지요.

   ‘밤이면 그는 남몰래 砂漠을 숨겨가지고 운다.’라고요.

   ‘砂漠(사막)’이라는

   시어가

   이토록 축축하게

   슬픈 느낌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네요.

   그래도,

   그래도 시인은

   ‘아직 가지 않은 길’을

   오직

   ‘아직 가지 않’았기에

   한사코

   가려 하는 모양입니다.

   ‘숨죽인 하늘이 있는 힘을 다해 푸름을 넓히고 섰다.’라고

   하는 것을 보면요.

   ‘아직 가지 않아서 눈이 부시도록 밝은 달이 떠 있는 그곳’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요.

   ‘검은 새 한 마리 높이 날아간 건너편 하늘은 온통 빛의 천지.’라고

   하는 것을 보면요.

   어떻게든

   하늘을 보려 하는

   시인의 모습이

   눈앞에

   선연히 그려집니다.

   하늘을 보려면

   의기소침하게

   고개를 숙이면

   안 되잖아요?

   올곧은

   마음으로

   고개를 위로

   쳐들어야

   하잖아요?

   그래요.

   무엇인지,

   무엇에 대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시인은

   소망을 잃지

   않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살아야지요,

   하루하루를,

   정성껏.

   고맙게도 시인은

   역시

   다짐합니다.

   ‘한 잔의 우유와 한 접시의 일상을 앞에 놓고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리라.’라고요.

   동시에,

   ‘앞날을 내다보리라.’라고요.

   이

   평범한 하루의

   다짐이,

   이 약속이,

   이 소망이

   참

   눈물겹게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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