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찬호,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P24. 그래도 우린 견뎌야 해요 – 송찬호,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359)
계절이 바뀔 때
그것도 하루아침에
언제 그랬냐는 듯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하다 못해
추운 기운이
옷깃을 여미게
만들면
우리는 흔히
사람이 참
간사하다는 말을
무심코
내뱉곤 합니다.
하지만 그건
간사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몸의 반응일
뿐입니다.
오히려 그건
어느덧 달라진
계절에
우리 몸이
적응하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한다는
신호일 겁니다.
이 적응을
시인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래도 우린 견뎌야 해요’라고요.
맞습니다.
우리 몸은
바뀐 계절을
견디기 위해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이 정도 간사함,
이 정도 적응,
이 정도 견딤도
시인은 부족하다고
여기나 봅니다.
이렇게 덧붙이니까요.
‘더욱 혹한이 와야 해요’라고요.
그러니까
간사하다는 말로
우리 몸의 애씀을
그 갸륵한 노력을
우리 스스로
철없이 그렇듯
무시하거나
폄하하거나
조롱해서야 쓰겠습니까.
우리 몸이
얼마나
우리를 위해서
애쓰며 견디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잖아요?
그래도 시인은
그렇게 철없는 우리를
위해서
위로하듯
동화 같은 한마디를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우리는 겨울의 여왕을 기다리고 있어요’라고요.
또,
‘겨울의 여왕은 멀리 북극열차를 타고 오지요’라고요.
왜
사랑으로 가득한
크리스마스가
하필이면
눈 내리는 추운
계절에 있는지
어지간히
짐작할 수 있지
않나요?
하지만
아직은 겨울이
아닙니다.
그래서 시인은
다짐합니다.
‘나는 달려야 한다 더 가벼워져야 한다’라고요.
그러면서 돌아봅니다.
지금 우리가
정확히 어느
계절 속에
있는지를요.
다음과 같은 시인의
말이
우리를 숙연하게
만듭니다.
‘지금은 청보리 한 톨에 바람의 말씀을 더 새겨 넣어야 할 때’라는 말이요.
그렇습니다.
아직은
이 계절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아직은 더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렇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
한 연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새 계절을 맞을 수 있고,
이 계절을 떠나보낼 수 있는
거겠지요.
시인은
어쨌거나 우리와
함께했던 이 계절을
보내는 데
예의를 갖추고자
합니다.
그 방법을 시인은
이렇게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나는 온몸으로 꽃들을 타종한다’라고요.
그리하여
꽃과 함께 이 계절이
총총히
떠나고 나면
우리는 비로소 ‘겨울의 여왕’을
맞을 준비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 마침내
‘북극열차’를 마중하러
계절의
플랫폼으로
나갈 자격이
생길 겁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계절에
대해서도
아마 예의를
갖추어야겠지요.
이 자각이
참 고맙네요.
덕분에 이 계절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고,
다가오는 계절을
잘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