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03. [영화 톺아보기] 그 이름 없는 사제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 -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1)
#02. 병약한 사제
이제 또다시 사제의 독백이 들려옵니다. 이 영화는 사상 유례가 없는 독백의 영화이기도 합니다.
‘내가 지나친 의무감 탓에 건강이 안 좋다는 사실이 보고되지 않은 것일까? 복통이 매우 심해서 자전거도 잘 타지 못하겠다.’
단순히 그가 첫 장면에서 자전거를 타지 않고 끌고 갔던 이유가 복통 때문이라는 사실 말고, 이 독백은 대단히 중요한 암시 하나와 복선 하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암시는, 이 사제가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힘들 정도로 나빠진 몸 상태를 고의로 숨겼을 만큼 처음 교구를 맡는 일에 몹시 집착하고 있다는, 또는 굉장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입니다.
복선은, 이 사제가 자전거조차 마음대로 탈 수 없을 만큼 건강이 나쁜 탓에 분명히 장차 모종의 어려움을 겪게 되리라는 점입니다.
요컨대, 우리는 사제의 마음과 몸이 영화의 갈등 구조를 지탱하는 두 가지 핵심이 되는 기둥임을 이로써 알아차려야 합니다.
당연히, 사제가 지닌 성격의 어떠함도 벌써 어지간히 헤아려집니다. 그는 신경이 매우 예민하고, 병약한 사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게 마련 아닙니까.
계속되는 사제의 독백은 끔찍할 지경입니다.
‘고기와 채소는 안 먹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면 빵을 포도주에 적셔서 조금씩 먹는다. 그나마 포도주에는 설탕을 많이 섞어야 하고, 빵은 며칠 두었다 눅눅해져야 가까스로 씹을 수 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머리가 맑아진다.’
그는 아무리 도두보아도 사제의 업무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직종의 일인들 온전히 수행해 낼 수 있을 만한 사람의 몸 상태가 아닙니다. 사제는 이미 갈데없는 환자입니다. 도대체가 누구를 돌볼 만한 처지가 못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당장 누군가가 곁에서 그를 세심하게 돌보아주어도 시원찮을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돌보아야 하는 사제직을 ‘감히’ 수행하려는 마당인 것입니다.
이 지극히 모순된 상황은 너무도 실존적이어서, 이 영화가 만들어진 때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불과 6년 뒤인 1951년이라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그러니, 당시 전후 유럽의 피폐함과 황폐함이 이 사제의 실존적인 상황에 고스란히 대응되는 느낌으로 읽히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성적으로 이전에 정서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1951년이라면 한반도가 6·25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을 때가 아닙니까.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한 김은국의 장편소설 《순교자》가 함께 떠오르는 국면입니다. *(다음 글로 잇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