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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Oct 17. 2024

그 이름 없는 사제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_04

  -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04. [영화 톺아보기] 그 이름 없는 사제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 -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1)

#03. 괴상한 사람들

   사제부터가 그렇지만, 앞으로 그가 만나게 되는 교구 사람들 모두가 하나같이 괴상합니다.

   그들이 까닭 없이 이 사제한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은 처음부터 너무나 자명하지요. 그 태도가 하도 노골적이어서 상황 자체의 리얼리티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심지어 파브르갸르그라는 이름의 교구 사람이 제 아내의 장례식에 사용한 성구들의 비용과 관련하여 사제를 찾아와 서로 첫 대면을 하는 장면은 기괴하기까지 합니다.

   먼저 사제가 그에게 말을 건넵니다.

   “제가 쓰던 테이블보하고 성포는 거저 드리지요.”

   분명히 호의를 베푸는 상황입니다. 한데도 상대방의 태도는 뜻밖에 몹시 퉁명스럽습니다.

   “하기야, 좀이 슬어 누더기가 되었으니, 사제님께 무슨 소용이겠어요?”

   게다가 이렇게 덧붙이기까지 합니다.

   “남의 불행을 이용하진 마시지요.”

   사제 쪽에서는 남한테 은혜를 베풀 좋은 기회겠지만, 그 은혜를 받는 쪽에서는 그리 고맙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뻔뻔스럽다 못해 적대적인 기운마저 느껴집니다.

   이어 이 젊은 신임 사제가 중년의 선임 사제를 만나는 대목은 더욱 기괴합니다.

   선임 사제는 서슴지 않고 파브르갸르그에 대하여 그리 대수로울 것도 없다는 듯 이렇게 논평하고 권합니다.

   “거, 그 사람 원래 그런 위인이니, 공연히 신경 쓸 필요 없네. 당장 내쫓게나.”

   그리고 덧붙입니다.

   “자네 같은 요즘 젊은 사제들, 난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구먼. 우리 때만 하더라도 진심으로 봉사할 줄 아는 사제들을 키웠지. 한데, 이젠 다들 성가대가 아니면 거지들 천지란 말이지. 할 일은 태산인데, 죄다 두 손 놓고 나 몰라라야. 도대체 뭐가 불만들인지, 자기들하고는 당최 안 맞는 일들이라 못 해 먹겠다는 거지.”

   덕담이나 격려의 말은 해주지 못할망정, 신임 사제를 앞에 두고 할 소리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거의 망발 수준의 소리들뿐입니다.

   그래도 이 젊은 사제는 소신 있게 대꾸합니다.

   “그래도 저는 맹세코 절대 포기 못 하겠습니다.”

   하지만 신임 사제의 대답 따위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선임 사제는 제 할 말만 계속합니다.

   “우리는 악을 물리치는 일로 지금껏 사랑받아왔다네. 하지만 참된 사제는 그런 사랑과는 거리가 먼 법이지. 무엇보다도 사람들한테 존경받는 게 먼저야. 날마다 이런저런 규율도 만들어야 하고. 오늘 자네가 무슨 노력을 했든, 그 모든 게 밤사이 다 헛일이 된다네. 이튿날이면 다시 무질서가 이길지도 모른다, 이 말이야.”

   이 젊은 사제한테 호의적이지 않기는 그 마을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제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영성체와 관련한 교리를 가르치다가 자신이 던진 질문에 가장 정확히 답을 하는 한 소녀 세라피타에게서 희망을 발견하고 위안을 얻을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그러나 세라피타 또한 자기가 사제의 강의를 열심히 경청하는 이유는 사제의 눈이 아름다워서라는 엉뚱한 말을 하여 아이들 앞에서 사제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맙니다.

   결국 사제는 이렇게 독백합니다.


   ‘대관절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다들 나한테 이렇게까지 적대적인 걸까?


   그러니 이제 두 가지는 확실해진 셈입니다.

   하나는 사제들에 대한, 또는 종교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까닭 모를 적대감이고, 또 하나는 마을 사람들의 영혼을 돌보아야 할 사제들이 정신적으로 거의 공황에 가까운 불안정한 상태에 빠져서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졸지에 그 한가운데 내던져진 젊은 사제는 대단히 병약한 인물입니다.

   이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이 또 있을까 싶은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문제적인 상황이지요.  *(다음 글로 잇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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