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10. [영화 톺아보기] 그 이름 없는 사제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 -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1)
#09. 세라피타
이야기는 맥락 없이 또 이미 앞서 등장했던 세라피타라는 소녀의 차례로 넘어갑니다.
시작은 언제나처럼 느닷없이 일기에서부터지요.
‘세라피타가 걱정이다. 그 아이가 하는 말에서는 나에 대한 증오감이 느껴진다. 그 나이답지가 않다.’
상황은 여전히 기이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제가 길에서 세라피타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지만, 세라피타는 사제를 본체만체 갑자기 가방을 내던지며 달아납니다.
다음은 사제가 그 가방을 세라피타네 집에 가져다주는 장면인데, 이때도 독백이 먼저입니다.
‘가방을 갖다 줬는데도 고마워하지 않는다.’
세라피타의 엄마는 사제한테서 딸의 가방을 받아 들고는 아무런 감사의 표시도 하지 않은 채 황급히 딸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자신에 대한 그 이상하리만큼의 은근히 날 선 적대감을 사제가 속절없이 재확인하는 순간이요 현장입니다.
사제는 씁쓸히 눈을 내리깔더니, 이윽고 자전거를 끌면서(타지 않고) 왔던 길로 돌아갑니다.
사제는 또 일기를 씁니다.
‘기도를 너무 안 하고 있어 죄스럽다. 하지만 어디 기도할 시간이나 있는가?’
일기는 줄기차게 쓰면서도 기도하는 데는 시간을 내지 못한다니, 그가 사제임을 떠올리면 이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고백입니다.
하지만 사제는 그러한 자기 실존의 상황을 그렇듯 가감 없고 꾸밈없이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기니까요. 독백이니까요. *(다음 글로 잇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