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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7. 낮술 인생과 밤술 인생 사이에서

- 노영석, 〈낮술〉

by 김정수

C57. 낮술 인생과 밤술 인생 사이에서 – 노영석, 〈낮술〉(2008)

낮술 인생과 밤술 인생의 차이

술을 밤에만 마시라는 법은 없습니다. 마시고 싶을 때 마시면 그뿐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밤에 술을 마십니다. 대개 초저녁부터 시작하여 한밤중까지 이어지는 식이지요?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좀 더 일찍 끝내는 경향이 늘어나기도 합니다. 물론 자정을 넘겨 밤새도록 마실 수도 있지만, 대개는 이것이 술을 마시는 어떤 정형화된 관행이 아닌가 싶군요.

〈낮술〉을 보다가 문득 이런 관행이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만일 해가 있는 낮에는 일을 해야 한다는 까닭 때문이라면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때부터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그때 벌써 술이라는 것이 있었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요.

어쨌거나, 낮에 일을 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라면 밤에 술을 마시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관행인 셈입니다. 술을 마신 채로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농사를 지을 때 새참으로 막걸리 한 잔 걸치는 것과 같은 정도는 예외로 쳐야겠지요. 아무래도 그것을 가리켜 음주(飮酒)라고 하기는 좀 뭣합니다.

그러니까 밤에 술을 마시는 인생, 곧 밤술 인생은 어느 정도 현실 속에 정착한 인생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 있고, 그래서 그 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 조절할 필요가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요.

하지만 낮에 술을 마시는 인생, 그러니까 낮술 인생은 밤술 인생에 대면 아무래도 어딘가 궤도를 벗어났다는 느낌이 앞섭니다. 낮에 술을 마셔도 지장 받을 일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인생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전에 대면 굳이 낮에만 일할 필요가 없는 서비스업이나 자유직업의 종류가 많이 늘어난 오늘날에는 낮술 인생을 가리켜 꼭 궤도를 벗어난 인생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꺼려지는 측면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현실이야 어떻든, 아무래도 낮술 인생이 밤술 인생보다는 어딘가 삶의 변방으로 얼마간 밀려난 인생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만은 부정하기 힘듭니다.

낮술을 마실 수 있는 인생, 또는 낮술을 마셔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는 인생, 또는 낮술 때문에 지장 받을 일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인생―.

억지로 범위를 좁혀서 말하자면, 낮에 딱히 오갈 데가 없는 사람들만이 죽치고 앉아 낮술을 마십니다. 직업인으로서 열심히 해야 할 일이 있거나, 학생으로서 꼭 들어야 할 수업이나 강의가 있는데도 낮술을 마신다면 그것은 어쩌면 심술궂은 어깃장이나 반항의 차원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쨌거나, 늘 그렇게는 살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낮술을 대놓고 멋대로 마셔댈 수 있는 인생이란 결국 걸어야 마땅한 궤도를 벗어나 있는 사람의 몫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 궤도를 잘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든 아니든, 낮술에 얽힌 추억 한둘쯤은 누구한테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인생의 어느 고비에서는 반드시 낮술을 마시게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 있지 않겠나, 싶은 것입니다. 낮술 한 번 마셔본 적 없는 인생은 참 따분하고 재미없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치게 한가롭고 낭만적인 태도일까요.

그렇다고 제가 이쯤에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낮술 예찬론으로 넘어가려는 것은 아닙니다.

신기하게도 그 수많은 술자리에 대한 기억들 가운데서 유독 낮술에 대한 기억만이 묘하게 향수를 자극하는 기억으로 남아 있어 신기하다는 고백을 하려는 것입니다. 밤술에 대한 기억이 그러한 경우는 선명하게 얼른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낮술에 대한 기억은 정서적으로 묘하게 가슴 한 귀퉁이를 건드리는 바가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제 가슴속 깊이 간직되어 있는 나만의, 또는 그 어떤 날 낮술의 자리를 저와 함께했던, 아니, 함께해 주었던 몇 안 되는 기억 속의 누군가를 새삼 소환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가슴속에 고이 간직해 두는 것만으로 충분하겠지요. 이것이 그때 저의 낮술을 함께해 주었던 몇몇 누군가에 대한, 또는 그 누군가와 얽힌 그리운 기억 자체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다만 이 영화 〈낮술〉을 보다가 문득 기억 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제 인생 한 대목의 낮술에 대한 기억이 조금은 아프게 떠오르며 이상한 그리움을 가슴속에 불 지펴 놓았다는 고백은 하고 넘어가려 합니다.

언제까지나 낮술 인생으로 살아가기는 곤란하겠지만, 밤술 인생이 낮술 인생에 견주어 아주 많이 감흥 있는 인생은 아닌 것 같거든요.

그렇다면 이 영화 〈낮술〉이 불러일으킨 낮술에 대한 그리움은 생각보다 무서운 것입니다.

한번 낮술 인생으로 잘못 풀려버리면 두 번 다시 밤술 인생으로 돌아오기 힘든 시절을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지금이 재기(再起)나 모색(摸索)을 어렵게 만드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제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낮술 인생에 대한 기억이 이토록 아프면서도 그립게 떠오르나 봅니다. 이런 그리움은 아무래도 온 마음으로 반길 만한 그리움은 아닌데 말입니다.


목표가 없는 여행과 목표가 있는 여행의 차이

이 영화 〈낮술〉의 여행은 아무런 목표가 없는 여행입니다.

실연(失戀)이 기본 모티브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거의 무작정의 여행이요, 충동적인 여행입니다.

그러면서도 마치 무슨 목표가 있는 사람처럼 이 영화에서 여행을 떠나는 그는 꽤 넉넉한 노잣돈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신용카드는 아니지만 현금카드도 가지고 있고요.

여행으로 자신을 괴롭히려는 생각은 처음부터 생각 밖의 것입니다. 고생스러운 여행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이 여행을 감행케 한 실연의 아픔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리 절절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저 젊은 시절 한때 스쳐 지나가는 흔한 연애사의 한 자락 정도라고나 할까요.

이 영화를 로드무비로 분류한다면, 예전의 한국영화의 로드무비와 견주어 바로 이것이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 점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한데, 이 다름에 대한 저의 마음은 두 겹입니다. 한편으로는 마음에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요.

마음에 든다면, 그것은 낮술 인생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런저런 현실적인 이유로 제가 그런 한가로운 여행 따위 할 여유가 없는 인생을 지금 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영원히 그런 성격의 여행은 두 번 다시 해보지 못한 채로 생을 마감하게 되지 않을까요. 따라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의 절반쯤은 질투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겠습니다.

이런 마음에 기대어 질시의 눈초리로 〈낮술〉을 뜯어본다면, 이 영화는 하나하나의 에피소드가 아주 리얼하게 느껴지기는 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결국 한갓 판타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여행을 많이 해봐도 ‘그런’ 일들이 현실로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주아주 드물지요. 이상과 현실은 다르게 마련이니까요.

이쯤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이 또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멈추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목표 없이 떠난 여행에 따라붙는 상황과, 목표를 설정하고 떠난 여행에 따라붙는 상황은 어쩐지 운명적으로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나면 그에 걸맞은 상황들을 맞게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70, 80년대 한국영화 로드무비의 주인공들은 거의 예외 없이 어떤 목표 의식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여행의 주체, 곧 주인공이 사로잡혀 있는 고뇌의 결이 달랐지요.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온몸을 내던져 마구 부딪쳐보는 마음의 강렬한 부대낌이 있었습니다. 그 부대낌이 빚어내는 진지함의 매력과 치열한 자기 학대의 매혹도 있었고요. 예, 감정의 압도적인 물결이 있었던 것입니다.

안성기 이미숙의 〈고래사냥〉(1984, 배창호)도, 강수연 이영하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1987, 송영수)도, 김혜자 정동환의 〈만추〉(1982, 김수용)도, 안성기 전무송의 〈만다라〉(1981, 임권택)도 다 그런 여행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 추억 속의 초상들일 뿐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낮술〉의 여행이 부러운가 봅니다. 이제는 그렇게 떠날 수가 없는 인생이 되어 있으니까요. 이제 그런 여행을 떠나려 한다면 단단히 결심하고 뭔가를 걸어야 합니다. 많은 것들을 과감히 내다 버려야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쓸 수 있는 시간 또한 넉넉하지 않지요. 아주 멀리 와버린 것입니다.

“여행이나 가자.” “그럴까?” “그래, 그러자.”

이러고 막바로 가방 하나 둘러메고 훌쩍 길을 떠날 수 있는 낮술 인생―.

요즘처럼 명소나 핫플을 돌아다니며 인스타나 유튜브에 올릴 사진이나 영상, 또는 릴스를 찍기 위한 것과 같은 ‘근사한’ 여행 말고요. 이제는 〈낮술〉과 같은 영화를 통해서나 구경할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이 되어버렸습니다.

낮술 인생, 한심하면서도 부러운 인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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