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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May 11. 2024

經(경)4. 《논어》를 읽는 당신은 어떤 독자세요?_4

- 유독료후 지호지자 / 《논어집주》 〈서설〉

經(경)4. 《논어》를 읽는 당신은 어떤 독자세요?_4 / 유독료후 지호지자 - 《논어집주》 〈서설〉

   세 번째 유형의 인물은 ‘有讀了後(유독료후) 知好之者(지호지자)’입니다.

   ‘有讀了後(유독료후)’는 앞의 것과 똑같지요?

   문제는 ‘知好之者(지호지자)’입니다.

   ‘지/호지/자’ 정도로 끊어 읽고, 그대로 번역하면 ‘그것을 좋아함을 아는 사람’이 됩니다.

   여기서 ‘그것’이라고 번역한 ‘갈 지(之)’자는 지시대명사로, 당연히 《논어》를 가리킵니다.

   한데, 번역문의 의미가 얼른 안 와 닿지요? 그렇다고 살짝 비틀어서 ‘좋아하게 됨을 아는’이라고 해도 의미가 분명히 와 닿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문장은 어떤 사람이 《논어》를 읽고 나서 《논어》 자체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앞의 두 사례를 바탕으로 따져보면, ‘전혀 일이 없는’이나, ‘한두 구를 얻고 기뻐하는’이 모두 내면에 생긴 변화의 유무, 또는 변화의 정도와 관계된 사태를 의미하므로, 이 ‘知好之(지호지)’를 대개는 ‘좋아할 줄 알게 되는’ 정도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논어》를 읽고 나서 내면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사람도 있고, 겨우 한두 구를 얻고 기뻐하는 사람도 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논어》 자체를 좋아할 줄 알게 되는 사람도 있다, 이것입니다.

   여기서 ‘좋을 호(好)’자를 ‘좋아하게 되는’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좋아할 줄’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앞에 ‘알 지(知)’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지(知)’자와 ‘호(好)’자를 합쳐서 우리말 문장으로 그 호응 관계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나도록 번역하려면 ‘좋아할 줄 알게 되는’이라고 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하여, ‘知好之者(지호지자)’를 번역하면 ‘그것(논어)을 좋아할 줄 알게 되는 사람’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有讀了後(유독료후)’까지 붙인 전체 문장 ‘有讀了後(유독료후) 知好之者(지호지자)’를 번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읽기를 마친 뒤에 그것(논어)을 좋아할 줄 알게 되는 사람이 있다.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상당히 훌륭한 독자(讀者)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좋아할 줄 알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이 사람은 앞으로 《논어》를 거듭 읽게 되지 않겠습니까. 사람이란 그 본성상 좋아하는 것과 자꾸 접하고 싶게 마련이고, 또 좋아하는 일은 어떻게든 반복해서 하려 들게 마련일 테니까요.

   ‘讀書百遍義自見(독서백편의자현)’이라는 말도 있듯이, 거듭거듭 읽다 보면 언젠가는 제대로 읽을 수도 있게 될 테고, 그렇다면 이 사람은 분명히 지금보다 훨씬 나은 방향으로 내면이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마디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스승으로서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가르칠 맛이 나는, 또 뒷날 가르친 보람도 있을 만한 제자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마지막 네 번째가 남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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