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수 May 18. 2024

經(경)5. 《논어》를 읽는 당신은 어떤 독자세요?_5

  - 유독료후 직유부지수지무지족지도지자 / 《논어집주》 〈서설〉

經(경)5. 《논어》를 읽는 당신은 어떤 독자세요?_5 / 유독료후 직유부지수지무지족지도지자 - 《논어집주》 〈서설〉

   마지막 네 번째는 ‘有讀了後(유독료후) 直有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者(직유부지수지무지족지도지자)’입니다.

   역시 ‘有讀了後(유독료후)’는 앞의 것과 똑같지요? 여기서는 뒤의 문장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우선, 맨 앞의 ‘곧을 직(直)’자는 ‘곧’, ‘곧장’, ‘바로’, ‘곧바로’, ‘막바로’ 따위로 번역할 수 있는 부사지요. 문제는 그다음의 ‘있을 유(有)’자입니다.

   이 네 번째 문장에는 ‘유(有)’자가 두 개 있습니다. ‘有讀了後(유독료후)’의 ‘유(有)’자와 ‘直有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者(직유부지수지무지족지도지자)’의 ‘유(有)’자입니다.

   물론 대개 문장 맨 앞에 있는 ‘있을 유(有)’자는 앞서와 마찬가지로 맨 나중에 번역하며, 문장 맨 끝의 ‘자(者)’자와 함께 ‘有~者’ 구문을 이루어 보통 ‘~한 사람(자, 것)이 있다’라고 번역하지요. 앞서의 문장들도 기본적으로는 다 이 ‘有~者’ 구문입니다.

   한데, 여기서는 ‘유(有)’자가 두 개라서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전체 문장이 ‘읽기를 마친 뒤에 ~한 사람이 있다’라는 식으로 번역되기에 ‘有~者’ 구문을 기준으로 보면, 맨 뒤의 ‘자(者)’자는 ‘直有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者(직유부지수지무지족지도지자)’의 ‘유(有)’자가 아니라, ‘有讀了後(유독료후)’의 ‘유(有)’자와 호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直有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者(직유부지수지무지족지도지자)’를 ‘곧바로 ~한 사람이 있다’라는 식으로 번역하면 ‘有讀了後(유독료후)’의 ‘유(有)’자를 번역할 방도가 없게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이 문장 번역의 열쇠입니다.

   그래서 ‘直有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者(직유부지수지무지족지도지자)’를 번역할 때 ‘유(有)’자를 ‘부지(不知)’에 붙여서 ‘곧바로 手之舞之足之蹈之(수지무지족지도지)를 알지 못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手之舞之足之蹈之(수지무지족지도지)’가 ‘부지(不知)’의 목적어에 해당하는 셈이지요.

   이제 앞의 것과 합치면 ‘읽기를 마친 뒤에 곧바로 手之舞之足之蹈之(수지무지족지도지)를 알지 못함이 있는 사람이 있다’가 됩니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手之舞之足之蹈之(수지무지족지도지)’만 번역해서 붙여 넣으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앞서 재미있다고 한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먼저, 글자부터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무(舞)’는 ‘춤추다’라는 뜻이고, ‘도(蹈)’는 ‘밟다’라는 뜻이지요? 한데, 이 ‘도(蹈)’는 ‘뛰다, 춤추다’라는 뜻으로도 쓰이는 글자입니다. ‘춤을 추다’나 ‘무용(舞踊)’이라는 뜻으로 이 ‘도(蹈)’자가 포함된 ‘무도(舞蹈)’라는 말이 지금도 쓰이고 있지요? ‘댄스파티’를 뜻하는 ‘무도회(舞蹈會)’라는 말도 있고요.

   문제는 ‘갈 지(之)’자입니다. 이 글자는 하도 용례가 다양하여 때마다 문장 속에서 어떤 구실을 하는지 잘 따져가면서 번역해야 합니다.

   ‘지(之)’자가 네 개나 포함된 이 ‘手之舞之足之蹈之(수지무지족지도지)’는 역자에 따라서 편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예외 없이 ‘손으로 춤추고, 발로 뛴다’라는 정도로 번역합니다.

   하지만 저는 ‘수지(手之)’와 ‘족지(足之)’에서 ‘지(之)’자를 주격조사로 보고 싶습니다.

   또, ‘무지(舞之)’와 ‘도지(蹈之)’의 ‘지(之)’자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일종의 어조사로서 그 바로 앞의 글자를 동사(서술어)로 만들어 주는, 또는 동사(서술어)의 기능을 강화하는 구실을 하는 글자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문장을 저는 ‘손이 춤추고, 발이 뛴다’라고 번역합니다.

   그러니까 ‘手之舞之足之蹈之(수지무지족지도지)’는 손과 발을 활발히 움직여 가면서 춤을 추는 모양을 나타내는 문장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이걸 ‘손으로 춤추고, 발로 뛴다’라고 하는 것은 손과 발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그 주체인 사람이 자기 의지로 손발을 움직여 춤을 추는 것임을 감안한 번역일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다 헤아려서 ‘有讀了後(유독료후) 直有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者(직유부지수지무지족지도지자)’ 전체를 그대로 번역하면 이렇게 되겠습니다.

   ‘읽기를 마친 뒤에 곧바로 손이 춤추고 발이 뛰는 것을 알지 못함이 있는 사람이 있다.’

   끊어 읽기는 ‘유/독료/후 직/유/부지/수지/무지/족지/도지자’ 정도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한문의 번역문이 대개 그렇듯 이것도 그대로 번역한 우리말 문장에 역시 어색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알지 못함이 있는’이 그렇지요. 그래서 이것은 자연스러운 느낌이 나게 ‘알지 못하는’ 정도로 다듬으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최종적으로 저의 번역문은 이렇게 됩니다.

   ‘읽기를 마친 뒤에 곧바로 손이 춤추고 발이 뛰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여기서 손이 춤추고 발이 뛰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채, 그러니까 자기도 모르게 손발을 움직여 춤을 추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역자에 따라서는 이 ‘부지(不知)’를 ‘자기도 모르게’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번역문은 이렇게 됩니다.

   ‘읽기를 마친 뒤에 곧바로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춤추고 발로 뛰는 사람이 있다.

   이 또한 괜찮은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글자 한 자 한 자를 일일이 다 짚고, 그 순서도 되도록 지키는 방향으로 번역했을 뿐입니다.

   아마도 이 네 번째 사례에 해당하는 사람이 정자가 생각하는 가장 훌륭한 《논어》의 독자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야말로 《논어》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본 사람이지요. 제대로 알아보았으니 정말 기뻤을 것입니다. 얼마나 기뻤으면 자기 손발이 절로 마구 움직여서 춤을 추는 것조차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다 읽고 나서 저도 모르게 스스로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논어》가 대단히 감동적이고 훌륭한 책이라는 의미가 되겠지요.

   물론 이 《논어집주》 〈서설〉은 정자(程子)가 아니라 주자(朱子)가 쓴 것이고, 예의 정자의 말은 주자가 인용한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글 전체를 정리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