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운명, 숨겨둔 이야기
26. 운명, 숨겨둔 이야기
한 차례 심호흡을 한다. 나는 어떻게든 눕지 않고 몸을 가누려고 엉덩이를 계단바닥에 비비듯이 하면서 벽 쪽으로 다가앉는다. 바지가 좀 상해도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 번 주저앉자 엉덩이를 들기조차 힘에 부친다. 깊은 물 속에 가라앉은 듯 몸이 무겁다. 벽이 멀다. 처음부터 벽 쪽으로 가까이 붙어서 걸을 걸 그랬다고 잠깐 후회한다. 제 때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생활 습관이 지금 내 몸 상태에 어울릴 만큼 충분히 바뀌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내 몸이 요구하는 것에 나는 재바르게 응하지 못한다. 나는 여전히 매우 굼뜨다.
내가 연행되어 온 다른 학생들과 함께 드러누워 있던 곳은 반지하, 넓고 깊고 썰렁한 공간이었다. 천장에는 수많은 형광등이 죄다 환히 켜져 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데도 애써 눈을 감고 있었다. 감시받고 있는 터라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다. 몸을 뒤척이기조차 조심스러웠다. 수군거리는 기척이라도 나면 어디선가 다짜고짜 조용히 하라는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늘한 공기 속에 모두가 잔뜩 얼어붙어 있었다. 문득 누군가 내 옆구리를 툭 건드렸다. 눈을 떴다. 내 바로 옆에 누워 있던 학생의 손가락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더러 그쪽을 보라는 뜻인 것 같았다. 아침이었다. 천장 가까이의 창이 벌써 환했다. 낯익은 얼굴이 둘 거기에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깜짝 놀랐다. 어떻게 찾았을까. 경찰서는 컸고, 집에서 아주 먼 곳이었다. 연락을 받고 날이 새기가 무섭게 차를 잡아타고 왔음에 틀림없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란히 쪼그려 앉아서 그 작은 유리창을 통해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너무나 낯선 광경이었다. 현실의 일 같지가 않았다. 꿈인가도 싶었다. 누운 채로 그저 멍하니 두 분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얼굴에 떠올라와 있는 표정이나 입 모양이나 눈빛을 똑똑히 알아보기에는 거리가 좀 멀었다. 이윽고 어머니가 말없이 손짓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수어였다. 동작이 컸다. 먼저 어머니는 손가락 하나를 세로로 곧게 펴서 자기 입 앞에 갖다 댔다. 그런 다음 다시 그 손을 활짝 펴서 좌우로 바삐 흔들었다. 그 두 동작을 어머니는 서둘러 과장되게 반복했다. 간절한 열망이 담긴 손짓이었다. 알아들었다. 입 다물고 다 부정하라는 뜻이었다. 아직 개별 취조가 이루어지기 전이었다. 내 눈에도 하룻밤에 그런 일을 마무리하기에는 인원이 너무 많았다. 그마저도 날마다 새로 자꾸 늘어나는 추세였다. 담당 형사들도 경찰서보다는 현장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을 터였다.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무슨 소린지 알겠으니 이제 그만하시라는 뜻으로 말없이 몇 차례 고개를 주억거려 보였다.
순순히 자백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것은 총학생회에서 시위에 참가하려는 학생들에게 하달한 행동 지침의 하나이기도 했다. 날마다 워낙 많은 학생이 연행되어 가고 있었다. 아침마다 캠퍼스 곳곳에는 단과대학별로 연행자 명단이 나붙었다. 그걸 확인하며 우리는 다시금 전의를 불태웠다. 그러니 인력은 늘 부족했다. 잡혀 들어갔으면 무슨 수를 쓰든 하루라도 빨리 훈방되어 나와 빈자리를 채워 넣을 궁리를 해야 했다. 시위를 하지도 않았는데 잘못 휩쓸리는 바람에 재수 없이 붙잡혀 왔다거나, 시위는 했지만 돌이나 화염병은 절대 던지지 않았다는 식으로 자기 혐의를 부정하거나 축소하든지, 형사들의 추궁으로 그마저도 곤란해지면 총학생회장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고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훈방 요건을 충족시키려 애썼다. 물론 시위를 하고 돌도 던졌다고 용감하게 자백을 해도 워낙 때가 때이니 만큼 요주의 인물 명단에 올라 있지 않는 한 대개 구속까지 가지 않고 즉심에 회부되는 정도로 끝났다. 형사들도 그들대로 취조 지침을 마련해 둔 탓인지 더는 집요하게 따지고 들지 않았다. 그럴 겨를도 없었고, 그럴 형편도 못 되었다. 어서 시간이 흘러가 이 사태가 진정되기만을 바라는 눈치들이었다. 그 순간 형사들과 학생들은 그렇듯 어찌 보면 서로 돕는, 하나의 공생관계였다.
굳이 부모님이 경찰서로 찾아와 힘을 쓸 필요는 없었다. 누구한테 어떻게 사정을 하고 얼마를 갖다 바쳤는지는 알 수 없다. 갑자기 담당 형사를 비롯하여 나를 대하는 그곳 사람들 몇몇의 태도가 슬그머니 부드러워진 걸 느꼈다. 예감은 적중했다. 나는, 아니, 우리는 이튿날 아침 일제히 훈방되었다. 물론 여느 범죄자들처럼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적힌 팻말을 손에 든 채 차례로 얼굴 정면과 측면 각각 두 장씩의 머그샷도 찍었고, 다시는 시위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각서에 서명도 한 다음이었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쪽에나 이쪽에나 다를 것이 없었다. 형사들에게 중요한 것은 모든 서류의 형식을 빈틈없이 갖추는 것이었고,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루빨리 훈방되어 경찰서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어쭙잖은 일치요, 타산적인 합의였다.
햇살이 눈부셨다. 꼴이 말이 아니게 후줄근했다. 세수도 하지 못했고, 머리도 헝클어진 모양새였으며, 군홧발에 걷어차이느라 옷도 두어 군데 찢겨 있었다.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팠다. 화장실에 들러 옷매무새라도 좀 가다듬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일 초도 더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 틈에 섞여 경찰서 정문 쪽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데, 문득 뒤에서 누가 나를 불렀다. 이제는 제법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나를 취조했던 형사였다. 희끗한 앞머리가 햇살에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취조실에서보다 한결 더 초췌해 보였다. 글쎄, 이 자를 앞으로 다시 만날 일이 생길까. 만난다면 다른 경찰서의 다른 형사일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나란히 함께 걸으면서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붙였다. 담배 냄새가 진했다. 이해하게. 우리도 뭐 이러고 싶어서 이러나? 시절이 하 수상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다음에는 좋은 일로 만나자고. 앞으로 군대도 가야 할 테고, 취직도 해야 할 텐데, 이 길이 자기가 가야 할 길인지 아닌지 잘 생각해서 처신하는 게 현명하지 않겠나.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고. 이런 취지의 이야기를 형사는 바쁘게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입에 발린 소리라고 생각했다. 이 또한 부모님이 왔다 간 효과가 아닌가 싶기도 하였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토론이나 논쟁 따위 할 마음이 아니었다. 그도 나한테서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기색은 아니었다. 경찰서 정문 앞에서 그가 나한테 악수를 청했다. 뿌리칠 수 없었다. 기분 나쁠 만큼 따뜻하고 축축한 손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곳을 떠났다. 몸이 조금 휘청거렸다.
어쨌든 집으로 연락은 넣어야 했다. 어머니는 거두절미하고 집에 잠깐 왔다 가라고만 했다. 공중전화로 듣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조금 이상했다. 평소의 어조가 아니었다.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버지의 전력에 대해서 어머니의 입으로 그때까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얻어듣게 된 것은 바로 그날이었다. 어머니가 새삼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나한테 해준 까닭이야 알 만했다. 결과만 놓고 따지면 어머니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었다. 그 뒤로 나는 시위에 더는 참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학교도 더는 다니지 않기로 했다. 휴학계를 냈다. 군대에 가려는 생각에서였다. 떠나고 싶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버리고 싶었다. 잊고 싶었다. 다 지긋지긋했다. 삶과 사람에 대한 혐오감과 환멸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느 근원에서 그런 혐오감과 환멸이 솟아 나오는지 살필 여력도 겨를도 없었다.
어머니가 안방에서 나를 앉혀놓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줄 때 그 주인공인 아버지는 멀찍이 떨어진 마루 저 끝 현관문 근처에서 이쪽을 외면한 채 우두커니 서성이고 있었다. 아버지의 청력으로는 그 거리에서 어머니의 말소리를 도저히 알아듣지 못할 터였다. 게다가 아버지는 귀에 보청기도 끼우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다 알고 있을 터였다. 머릿속으로는 벌써 부지런히 이야기의 흐름을 시간 순서대로 하나하나 짚어보고 있을지도 몰랐다. 환했던 날씨가 이야기를 듣는 동안 흐려졌다. 방안이 어둑어둑했다. 나는 처음부터 줄곧 어머니를 보지 않고 있었다. 차마 볼 수 없었다. 내 눈길은 방바닥에 단단히 꽂힌 채였다. 어머니는 나 말고는 아무도 이 이야기를 들어서는 안 된다는 듯이 한껏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때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이다. 새내기 시절의 어느 날 선배가 건네준 두툼한 문건을 읽고 몇 해 전 봄 저 멀리 남도의 한 유서 깊은 도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처음 알았을 때 받았던 충격과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그때의 감정이 분노 쪽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배신감에 더 가까웠다. 나는 배신감이 얼마나 혐오나 환멸로 쉽게 바뀔 수 있는 감정인지를 처음 알았다. 그건 그들의 일이었지만, 이건 온전히 내 일이었다. 잊을 수도, 부정할 수도, 무를 수도 없었다. 거기에는 숫제 거리감이라는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성큼 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나는 느닷없이 그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나를 겹겹으로 튼튼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도무지 탈출할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설명은 되었다. 아버지가 광태를 부리며 살아온 이유에 대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단순한 설명. 가혹하다면 참으로 가혹하고, 잔인하다면 퍽이나 잔인한 운명이었다. 아버지는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다. 창창했던 앞날을 통째 강탈당한 셈이었다. 아버지가 조금만 더 약삭빠르고, 조금만 더 교활하고, 조금만 더 타산적이었다면 그 야속한 운명의 손길을 피할 수 있었을까. 적어도 방향을 조금은 바꾸어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아버지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는 곳에서 이미 운명은 무자비한 작당을 시작했다.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시절. 근대와 전근대가 한데 뒤섞여 분간되지 않던 시절. 사회 곳곳에서 전근대적인 혈연관계와 근대적인 법질서가 맞부딪히던 시절. 해상도가 너무 낮아 사물의 윤곽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는 구식의 불량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듯한 형국이 아니었을까. 아버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쪽 발은 이쪽에, 다른 쪽 발은 저쪽에 담근 채 어느 쪽에 속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시절 순박한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랬듯이.
그래, 이게 맞는 설명일 것이다. 아버지는 순박했다. 시골의 가난한 부모 밑에서 착하고 성실하게, 공부 하나 열심히 잘하여 이 나라 최고의 명문대에 여봐란듯이 합격한 순박한 수재. 이것이 그 시절 아버지에 대한 가장 적확한 정의일 것이다. 다른 데 곁눈 팔지 않고 우직하게 오로지 한 길만 걸었을 것이다. 그러느라 보이지 않는 음습한 곳에서 어떤 음모가 획책되고 있는지 헤아릴 틈이 없었을 것이다. 순박했던 만큼 세상을 단순하게 파악했을 것이다. 나만 열심히 잘하면 세상은 그에 걸맞은 보답을 반드시 해주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운명한테는 때로 아무 이유 없이 순박한 사람을 짓밟기도 하는 잔혹 취미가 있다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