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아버지의 과거, 첫 번째
27. 아버지의 과거, 첫 번째
한 소년이 있었다. 부모는 농사를 지었다. 가난했다. 집안 형편이 어렵다는 걸 소년은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었다. 희망은 한 가지뿐이었다. 희망이 한 가지뿐이라는 사실을 알 만큼 소년은 적어도 그쪽으로는 일찍 철이 들었다. 소년은 열심히 공부했다. 성적이 좋았다. 열심히 한다고 누구나 다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소년은 공부에 타고난 소질이 있었던 셈이다. 상급학교로 진학할 시기가 되었다. 부모의 고민도 시작되었다. 돈이 드는 일이었다. 대처로 나가야 했다. 공부 쪽으로는 문제 될 게 없었다. 부모가 허락만 해준다면 소년은 좋은 성적으로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을 터였다. 부모는 어떻게든 소년의 뒷바라지를 해주기로 결단을 내렸다. 농사만으로는 안 될 일이었다. 부모는 대처에 아들이 있을 곳을 마련하고 새로이 일을 시작했다. 장사도 하고, 날품도 팔았다.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아무리 고생스러운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속절없이 얼마간 빚도 졌다.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소년은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그것만이 부모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공부는 신기하리만큼 잘 되었다. 성적은 눈부실 지경이었다. 소년은 수재 소리를 들었다. 마침내 대학에 갈 때가 되었다. 학교에서는 이 나라 최고의 명문대학에 원서를 써주겠다고 했다.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는 담임선생의 장담에 소년의 부모는 믿기지가 않았다. 아들이 공부를 남달리 잘한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어쩌면 기울어진 집안 전체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거창한 꿈마저 꾸었다. 소년은 부모의 바람과 희망대로 여봐란듯이 대학에 합격했다. 그것도 장학생이었다. 온 집안의 경사, 온 고을의 희사요 길사였다. 바야흐로 소년의 앞길에는 거칠 것 없는 탄탄대로가 뻥 뚫려 있는 듯했다. 모두가 그렇게 믿었다. 소년의 부모도, 소년 자신도.
소년은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다. 다들 장차 출셋길이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부러워하는 명문대생. 그는 꿈에 부풀었다. 그 꿈에 취해 잠시 한눈을 팔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학업에 정진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의 어느 날 그는 부모님을 뵙고자 고향 쪽에 내려왔다가 한 여자를 알게 되었다. 연애의 시작이었다. 심성이 착하고 아리따운 여자였다. 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조건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여자는 그때 고등학생이었다. 떨어져 있으니 자주 만날 수 없어 둘은 편지를 많이 주고받았다. 헤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혼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하나같이 마다할 이유가 없는 훌륭한 혼처들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굳어 있었다. 부모는 아들이 데려온 여자가 성에 차지 않았지만, 오래 반대하지는 않았다. 아들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마침내 둘은 결혼했다. 그리고 첫아들이 태어났다. 살림이 조금 더 나아지면 넓은 집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 작정이었다. 이제 열심히 일하며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다.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루는 그가 다니는 직장으로 낯선 사내들이 찾아왔다. 이름만 대면 다 알 만 한 국가기관에서 나온 이들이었다. 그들은 양쪽에서 그의 팔을 붙들고 옴짝달싹 못 하게 하고서는 그를 다짜고짜 연행해 갔다. 눈을 가린 채 차에 실려 모처로 끌려간 그는 그날부터 혹독한 심문을 받았다. 고문은 기본값이었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랐다.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바른대로 대라는 소리만 줄곧 들었다. 몇 날 며칠을 시달릴 대로 시달리고 나서야 마침내 사정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운명이 자기를 망치기로 작정했다고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고 느꼈다.
몇 해 전, 부모님을 뵈러 내려갔다가 뒷날 자기 아내가 될 여자를 처음 만났던 바로 그때였다. 학기 중이었다. 좀처럼 없던 일이어서 갑자기 나타난 아들을 보고 부모는 놀랐다. 당연히 어쩐 일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어리둥절한 쪽은 오히려 아들이었다. 전보를 치셨잖아요. 그가 받아본 전보에는 다섯 글자뿐이었다. 어, 머, 니, 위, 독. 눈앞이 캄캄했다. 집에 전화가 없던 시절이었다. 조급한 마음에 그는 바로 역으로 달려가 하행선 기차를 탔다. 기차는 하염없이 느렸다. 여느 때 같았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내다보았을 차창 밖 풍경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슴이 바작바작 타들어 갔다. 아들은 집에 당도하여 어머니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자기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결국 부모 곁에서 이틀을 더 지내고 나서야 비로소 서울로 올라갈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부모는 학업에 지장이 생길까 싶어 벌써부터 어서 올라가라고 아들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바로 그 이틀 동안이 문제였다는 것을 그는 가까스로 알아차리고 소스라쳤다. 뒷날 자기 아내가 될 여자를 처음 만났다는 사실에 눈이 어두워 그 밖의 다른 일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행운이라고 여겼는데, 그 행운이 자신을 응원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 행운의 옆에 불운이 염탐꾼처럼 보이지 않게 찰싹 들러붙어 있었던 셈이다. 아니, 어쩌면 불운이 행운의 가면을 쓰고 그를 유혹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 유혹이 불운을 불운으로 알아볼 수 있는 냉철한 눈을 그에게서 빼앗았던 것이다. 그는 불운을 행운으로 착각하고 말았다. 아니, 행운에 취하여 불운에서 눈길을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까맣게.
집안에 월북자가 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위로 한참 형님뻘 되는 사람이었다. 전쟁 통에 갔는지, 휴전이 된 직후의 어수선한 틈을 타서 그랬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한때 부역을 했다는 소리가 있었다. 자발적으로 그랬는지, 떠밀려서 그랬는지, 어쨌든 그 일로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그 사람이 몇 해 만에 느닷없이 고향마을에 나타났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때만 해도 수상한 사람을 보면 신고해야 한다는 의식이 널리 퍼져 있지 않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다 한 집안사람들이었고 혈육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가 받은 문제의 전보는 바로 그 사람이 부친 것이었다. 주소를 알아내는 것쯤이야 쉬운 일이었을 테고. 그의 부모는 비록 소문은 좋지 않아도 집안의 조카뻘 되는 사람을 내놓고 의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도리어 오랜만에 나타나 꾸벅 머리 조아리고 인사를 해오는 조카를 반겨 맞아주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사람은 그동안 남몰래 서울에서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며 어렵사리 자리를 잡았다고 그럴듯하게 둘러대었을 수도 있다. 본디부터 언변이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랬다. 딱 한 번, 잠깐 만났다. 그 사람이 그를 불러낸 것이다. 이런저런 신변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 순간 조심스레 그의 마음을 떠보는 소리를 했다. 구체적이지는 않았어도 그는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꼈다. 듣고 싶지 않았다. 더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서 이 자리를 뜨라는 경고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그 소리를 따르기로 했다. 이야기가 거기서 더 깊이 진전되기 전에 그는 마음을 다잡고 몸을 일으켜 그 자리를 피해 나왔다. 그리고 바로 짐을 쌌다. 어머니가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챙겨서 넣어주는 바람에 내려올 때보다 짐이 많아졌다. 뒷날 아내가 될 여자를 처음 만난 것은 그날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역 대합실에서였다. 아내는 깔끔한 교복 차림이었고, 서울까지 가는 길은 아니었지만, 얼마간 방향이 같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인 양 둘은 금세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연분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그는 서울로 올라왔고, 고향에서 있었던 다른 일들은 싹 다 잊어버렸다.
그 사람과의 그 짧은 만남이 뒷날 그토록 심각한 문제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누구도 그런 생각을 못 했다. 그 사람이 자수를 함으로써 자신이 남파간첩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밝힌 것은 누구라도 그때 일을 충분히 잊어버릴 만큼 세월이 한참 지난 다음이었다. 한데, 그게 위장 자수였다는 사실이 조사과정에서 밝혀졌다. 시기도 좋지 않았다. 어쩌면 고의로 그런 시기를 택해서 자수를 한 것인지도 몰랐다. 하필이면 그 무렵 북에서 무장공비들이 남으로 내려와 최고 권력자가 사는 곳을 침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정국이 살벌했고, 민심이 흉흉했다.
온 집안사람들이 모조리 다 기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언제 어디서 그 사람을 만났는지,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꼭꼭 묻어두었던 기억들을 낱낱이 떠올리고 자백해야 했다. 그도 예외일 수 없었다. 오히려 배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는 몇 배나 더 혹독한 심문을 받아야 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하나하나 빠짐없이 들추어졌다. 없는 기억도 만들어서 털어놓아야 할 판이었다. 이어 재판이 진행되었고, 그는 자기 인생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모면할 방도가 없었다. 시절이 너무 엄혹했다. 죄명은 듣기에도 생소했다. 알고도 말하지 않은 죄, 불고지죄였다. 그런 죄가 있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런 것이 죄가 될 수도 있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영어의 몸이 되고 말았다.
여기까지가 내가 경찰서에서 훈방되어 나온 날 어머니가 나한테 들려준 이야기다. 문제의 소년, 그가 바로 내 아버지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백일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빠진 대목이 적지 않다. 어머니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이야기, 어머니가 곁에서 함께하며 지켜본, 그리고 얻어들은 남편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 이야기대로라면 아버지는 갈데없이 억울한 피해자요 희생자다. 이것이 어머니가 파악하고 있는 아버지의 정체다. 그렇다면 지난 세월 어머니가 아버지 곁에서 그 온갖 광태를 묵묵히 참고 견뎌낸 것도 자기 남편이 그런 희생자이자 피해자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을까. 바로 그 연민 때문이었을까.
아버지의 광태를 목격할 때마다 나는 늘 한 가지 의문에 사로잡히곤 했다. 어째서 어머니는 저런 남편과 헤어지지 않는 것인가. 아들인 나를 위해서도, 어머니 자신을 위해서도 그게 현명한 선택 아닌가. 어머니의 인생과 내 인생이 이렇듯 한 묶음으로 고약스럽게 망가지고 있지 않은가. 이건 너무나 분명한 사실 아닌가. 내 눈에는 우리 가족의 앞날에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늘 공포에 질려 있었다. 나는 날마다 우울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분노에 휩싸였다. 내 머릿속에서는 우리 집 지붕 위에 두꺼운 먹구름이 무겁게 잔뜩 덮여 있는 어둡고 암울한 이미지가 떠날 줄을 몰랐다. 그런 의문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마침내 내 인생을 망치는 데는 아버지만이 아니라 어머니도 한몫하고 있다는 결론에 가닿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음으로써 결국 아버지의 광태를 옆에서 거든 셈이었다. 어머니한테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 그래, 그거였다. 그 생각으로 나는 조금은 더 떳떳하게 집을 떠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