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My Cinema Aphorism_36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36

by 김정수

CA176. 엘로리 엘카엠, 〈프릭스〉(2002)

단 한 사람의 영웅적인 활약상이 없다는 참신함. 돌연변이 거미라는 설정의 진부함. 다수의 보통사람들이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한다는 설정의 진부한 참신함, 또는 참신한 진부함. 끔찍함을 적절한 선에서 자제한 사려 깊음. 적당한 유머와 적당히 밝은 분위기의 균형감. 덧붙여, 문제 해결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어린이의 등장. 향수(香水)에 흥분하는 거미 소재. 암컷과 수컷의 기묘한 성 역할에 대한 고찰. 침대 위에서 먹는 아침 식사의 이미지. 한데, 수컷은 암컷한테 잘 보이고자 먹이를 죽이지 않고(!) 살려둔다.


CA177. 정흥순, 〈가문의 영광〉(2002)

조폭이든 누구든 체제 안에 합법적으로 번듯하게 자리 잡고 싶어 하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 마찬가지라는 것. 그러니 자식을 누구와 결혼시키느냐가 중요해지지 않을 수 없다. 정략결혼이라는 형태 또는 방식은 자유연애와는 무관하게, 어찌 되었든, 우리 문명 속에 존속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 어쨌거나 가문의 영광은 개인의 영광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이므로. 그러니 사랑의 감정을 내세우고자 애를 쓰는 것은 어쩌면 순진한 관객을 현혹하려는 궁여지책일까.


CA178. 오시마 나기사, 〈감각의 제국(愛のコリ-ダ)〉(1976)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그들의 섹스 행각이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곳은 죽음이고 광란이다. 여기에 자유가 있고, 군국주의의 광기에 사로잡혀 폐소공포증의 세계에 갇혀 사는 일본 사회와 일본인에 대한 고발이 있다. 1936년 당시 일본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실제 사건이 소재라는 점은 그즈음이 군국주의 이데올로기가 승(勝)하던 시대라는 점과 더불어 이 영화의 주제를 해석하는 데 빠트릴 수 없는 요소일 듯. 끝없는 내실(內室), 곧 밀폐된 공간에서의 정사(情事)와 짤막하나 의미심장한 두 개의 이미지 또는 키워드. 하나는 근대의 상징인 기차, 다른 하나는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행군하는 군인들. 남성으로 대변되는 군국주의가 결국은 여성의 손으로 결딴난다는 점. 끝없이 남자를 곁에 붙들어 두려는 여자의 가열한 노력은 요컨대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니 일본은 진작에 그런 파멸을 맞이해야 했다는 당위. 감독은 바로 그런 식으로 군국주의를 향해 치달아가는 일본의 고삐를 잡아채고 싶은 강박증을 표현한 셈이다.


CA179. 김성호, 〈거울 속으로〉(2003)

공포 이미지나 정서가 영화 속으로 들어오면 그 영화가 의심의 여지없이 공포영화로 분류되는 경향의 이상한 본말전도. 형사영화에 공포 요소를 섞었을 때 영화의 정체성은? 적어도 무서울 까닭은 없다는 것. 무섭지 않다면 정체성을 규정하는 작업이나 시도는 단순해진다.


CA180. 나카다 히데오, 〈검은 물 밑에서〉(2002)

어린 시절을 잃어버린 영혼은, 그가 산 자든 죽은 자든, 그 상실감에 대한 보상심리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그 영혼이 원혼(冤魂)이 되는 것은 그래서다. 엄마가 필요하고, 아빠가 필요하고, 가족이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그 원혼은 그 사랑을 어떻게든 얻어 누리려 하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흔히 복수의 피바람을 몰고 온다. 대상은 누구든 상관없다. 이 복수의 특징은 완전한 무차별이라는 점. 이 영화는 바로 이 복수를 딸에 대한 엄마의 사랑으로 무마시키는 설정을 택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원혼은 여인이 자신을 딸로 받아들여 주는 순간 복수를 포기한다. 그 덕에 여인의 딸은 무사히 고등학생으로 성장한다. 10년 뒤 옛집을 찾아간 딸이 엄마의 영혼과 재회하고 나서 내뱉는 독백은 그래서 아리다. ‘엄마는 항상 이곳에서 날 지켜주고 있었다.’ 딸은 엄마가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을 그 원혼의 마수로부터 지켜주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

keyword
이전 05화My Cinema Aphorism_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