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35
CA171. 조선호, 〈청설〉(2024)
용준(홍경)과 여름(노윤서)에게 이렇다 할 꿈이 없다는 설정의 기특함. 꿈이 없기에 그들은 각자의 꿈을 찾아보려고 함께 노력할 여지가 생겼다. 그렇게 같이 어울려 할 일이 있다면 그들은 서로 사랑할 수 있고,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이 이 영화가 같은 ‘코다(coda)’ 소재인 〈코다〉(2022, 션 헤이더)와 다른 점이며, 동시에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 점이다.
CA172. 션 베이커, 〈아노라〉(2024)
그들이 마피아가 아닌 점, 그녀 아노라(마이키 매디슨)가 문자 그대로의 성 노동자가 아닌 점, 그가 마피아 보스의 아들이 아니라 재벌 2세라는 점, 이것이 범죄 영화가 아닌 점, 동시에 살짝 코미디인 점, 무엇보다도 유혈 참극을 피해 간 점, 또 강간의 장면을 허용하지 않은 점, 마침내 그녀가 ‘진심으로’ 울어버린 점 따위의 유니크함.
CA173. 김창주, 〈아마존 활명수〉(2024)
약물과 아마존의 상관관계에 대한 의문, 또는 왜 하필 양궁이어야 하는 점에 대한 의문, 약물 광고와 영화 광고의 상동성에 대한 의문……. 이렇듯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웃기가 힘들어지고, 나아가 불편해진다. 금광이라는 소재의 올드함, 스포츠 소재의 맥락 없는 선택, 익숙한 느낌이 향수를 자극하는 데까지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에 대한 고민의 부재……. 류승룡의 코미디 연기가 처음으로 살짝 안쓰러웠다.
CA174. 빔 벤더스, 〈폭력의 종말〉(1997)
이 세상에서 폭력을 끝장내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달성할 의도로 선택한 방법이 몰래카메라를 통한 전방위 감시라는 것은 이 기획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점을 암시한다. 감시는 폭력의 또 다른 형태인 탓이다. 결국 그 감시를 완성하기 위해서 그들은 역시 폭력이라는 수단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폭력을 폭력으로써 근절하겠다는 발상은 칼은 칼로 망한다는 격언 앞에 여전히 무력하다. 미국은 이 오류의 역사를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CA175. 안병기, 〈폰〉(2002)
원한 관계에서 귀신과 마주 보는 대응 항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인 까닭은? 가부장제의 이상한 압력?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충분히 해주어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위해 현저한 수준으로 노력해주어야 한다. 또는, 그 노력의 기미를 현저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