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38
CA186. 리들리 스콧, 〈프로메테우스〉(2012)
엔지니어(들)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면, 그들에게 있는, 또는 있을지도 모르는 창조 신화는 어떤 것일까. 또는, 인간의 창조 신화와 어떻게 다를까. 아니면, 그들의 바이블은 어떤 내용으로 채워져 있을까. 이 영화는 이 점에 대한 검토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 또는, 나아가지 못했다.
CA187. 리들리 스콧, 〈에이리언: 커버넌트〉(2017)
내 생각에 〈에이리언〉(1979, 리들리 스콧) 시리즈에서 가장 이상한 것은 인간 쪽에서 에이리언 자체에 대한 생물학적인 연구가 지지부진하거나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연구 실적이 없거나 모자라니, 에이리언은 대적 불가, 넘사벽의 가공할 만한 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CA188. 김상진, 〈광복절 특사〉(2002)
김상진 영화 속 집단 난투극은 일종의 집체극을 닮았다. 자기 인생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은 모든 사람은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원점 회귀에 대한 강박증 또는 욕망의 시현(示現). 무엇보다도 탈출의 목적이 탈출 자체라는, 일찍이 〈알카트라즈 탈출〉(1979, 돈 시겔)이 표명했던 메시지의 코미디 버전.
CA189. 방성웅, 〈교도소 월드컵〉(2001)
교도소라는 공간과 축구라는 스포츠의 결합. 하지만 이 결합에서 튀는 불꽃은 충분하지 않은 느낌이다. 편집으로 교묘히 이어 붙인 액션들의 어색함, 또는 어색하게 이어 붙인 액션들의 남발. 바로 여기에 감정이 그 적절한 자리를 찾아 끼어들 틈을 못 찾고 겉도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CA190. 오시마 나기사, <교사형(絞死刑)>(1968)
고다르가 만들었더라면 훨씬 더 신랄하고 유머러스해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영화. 어쩐지 유머가 마음껏 섞여 들어가야 할 듯한 대목에서 감독은 자꾸만 진지해진다. 그래서 영화는 폐쇄 공간 속에서 역동적인 등장인물들의 액션으로 넘치는데도 여전히 갑갑하다. 이때의 갑갑함은 공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사형제도 폐지론에 대한 논쟁이라기보다는 재일한국인 문제 쪽에 무게 중심이 놓인 듯. 결국 R이 죽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이자, 동시에 일본이라는 국가에 그가 발을 딛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재일한국인들은 그들이 한국인인 이상 한국으로 돌아와 살아야 한다. 또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그런 식의 이민 또는 유민이 생기도록 하는 만행을 일본은 더는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는 마땅한 전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