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4. 살아서, 여럿이, 가자

- 황지우, 《나는 너다》

by 김정수

P34. 살아서, 여럿이, 가자 – 황지우 시집, 《나는 너다》(문학과지성 시인선 R06, 문학과지성사)

아,

시인의 권유가

우리 가슴을

뜨겁게 데웁니다.

살아서, 여럿이, 가자’라는 권유가요.

서로 죽고 죽이지

않고 ‘살아서’,

저 혼자만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여기

주저앉거나 뒤로

물러나지 않고

앞으로 ‘가자’라고요?

이 얼마나

뭉클하게

가슴을 울리는

권유이자 독려입니까.

한데,

실은

이 독려에 앞서

시인은

이렇게

아픈 고백을 했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 다친다’라고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결국

사람 때문에,

사람한테서 상처를 받습니다.

그렇게

다친 마음으로 우리는

하루하루를

힘겹게 견딥니다.

그게

삶이잖아요?

그러면서도 시인은

역시

시인답게

자신을 돌아볼 줄

압니다.

치열하게 싸운 자는 敵이 내 속에 있다는 것을 안다’라고요.

나에게 상처를 입히고,

나를 다치게 하는

그 모든 싸움이

알고 보면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예,

따지고 보면

치열하게 싸운 자’는 결국

나 자신이라는 적과

싸운 것입니다.

치열하게 싸우는 자일수록

자기 자신이라는 적과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시인은 마침내

이렇듯 무서운 고백까지

합니다.

어둠 자체가 무서운 것은 아니다. 무서운 것은, 다가오는 물체를 크게 보는 내 마음 속에 있다.’라고요.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시인의 눈이

가차 없습니다.

결국 시인은

이렇게

토로하고야 맙니다.

나는 내가 버겁다.’라고요.

그렇지 않은가요?

우리가 힘겨운 것은

나 자신의 무게 때문

아닌가요?

우리가 흔히들 하는

힘들다는 고백은

결국

나 자신이 버겁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더 잘 보려면 눈을 감아라. 나를 가로막는 것은 나이노니.’라고요.

스스로를 대하는

시인의 태도가

자못 준엄합니다.

이렇듯 준엄하기에

시인은 마침내

이렇게

선언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죽기 아니면 사랑하기뿐!’라고요.

답이 나왔네요.

아무렴요.

죽지 말고

사랑해야겠지요.

그래서 시인은

사랑하는 이에게 감히

이렇게 청합니다.

살아 있으세요.’라고요.

그렇잖아요?

살아 있어야

사랑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야 살아서,

여럿이,

함께

갈 수 있지 않겠어요?

예,

우리 모두,

살아서,

함께,

갑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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