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5. 살아가는 게 겁이 날 때가 있어

- 김소형, 《ㅅㅜㅍ》

by 김정수

P35. 살아가는 게 겁이 날 때가 있어 – 김소형 시집, 《ㅅㅜㅍ》(문학과지성 시인선 474, 문학과지성사)

시인의 고백에

덜컥

공감이 갑니다.

살아가는 게 겁이 날 때가 있어’라는 고백에요.

정말

그렇지 않은가요?

살다 보면,

문득문득

겁이 나는 게

우리네 인생이잖아요?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게

우리네 삶이니까요.

그렇게

겁이 나는 순간순간들이

쌓여가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우리는

사는 일 자체에

지치는 기분이 들지요.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토로합니다.

죽음도 귀찮아’라고요.

세상에,

죽음마저도 귀찮다니요!

사는 것이

얼마나

힘겹고 무서우면

죽음까지도 귀찮을까요.

‘죽지 못해 산다’라는 말이

그래서 있는 걸까요.

심지어 시인은

어쩌면

하루 가운데

가장 평화롭고 나른할

오후 한 시 무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죽음이 다닥다닥 들러붙는 오후 한 시’라고요.

아,

끔찍합니다.

오후 한 시가 그러할진대,

나머지 시간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뿐입니까.

정오에 대해서까지

시인은

이렇게 가차 없이

표현하고야 맙니다.

정오는 정말이지 평화로워서 견딜 수 없다’라고요.

죽음마저도 귀찮으니,

정오의 평화인들

어디 견딜 만하겠습니까.

하지만,

이 모든 시인의 말들을

우리 삶에 대한 저주라고

새겨읽는다면,

그건 ‘못된’ 오해요

오독일 것입니다.

시인은

우리네 삶이 그러하다는 것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솔직하고 정직한 태도가

어쩌면

출발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예,

그래야 할 겁니다.

그래서 시인은

새삼 마음을 가다듬고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우리는 믿지 않지만 사랑은 믿었다’라고요.

그렇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랑만은,

예,

사랑만은

무섭지도,

귀찮지도,

견딜 수 없지도 않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네 삶이

그토록 가혹하고 흉맹한데도

기어이

사랑에 대한 믿음까지

버리지는 않은 시인이

갸륵하고 고맙습니다.

무서운데도,

귀찮은데도,

견딜 수 없는데도

시인은

용기를 내어

사랑만은 믿는 것입니다.

예,

사랑은 의지입니다.

믿겠다는 의지―.

그렇게 의지로

마음을 가다듬은 시인이

무슨 일을 하는지

보시지요.

시인은

아이를 생각하며 빵을 굽는’(!)군요.

예,

시인은

우리네 삶이 무섭고,

귀찮고,

견딜 수 없지만,

어느 순간 문득

아이가 떠올라서

아이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이를 생각하는 순간

시인은

그 모든 무섭고,

귀찮고,

견딜 수 없음을

한순간에 잊어버리고,

아이를 위해서

빵을 굽습니다.

왜냐고요?

아이를 먹이려고요.

먹인다는 것은 곧

살린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

아이를 살리려면,

빵을 구워야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빵을 구우려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예,

시인도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마침내

고분 같은 쌀밥에 숟가락을 들이’밉니다.

아,

시인이 쌀밥을 먹기 위해

그 쌀밥에 숟가락을 들이미는 행위가

어찌 이리

아름답고 눈물겨운지요!

그러니,

마침내

시인의 입 밖으로 튀어나온

다음과 같은

느닷없는 고백에

그 누가 공감하지 않겠습니까.

여긴 정말이지 조용하고 아름다워’라는 고백에요.

예,

그럼 된 거

아닌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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