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67
CA331. 찰스 어먼 윔펠드,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2002)
인간은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존재이며, 또 그렇게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존재다. 그의 정체성을 결정해 주는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그가 몸담은 채 살아가고 있는 사회다. 그는 그 사회의 결정에 순응한다. 대부분의 인간이 그렇다. 하지만 이 정체성을 의심하게 되는 결정적 순간이 언젠가는 반드시 도래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 순간 대부분의 인간은 판단을 유보하거나 무시한다. 그래서 기존의 삶, 그 패턴을 유지해 나간다. 이것이 소위 ‘정상적인’ 삶이다. 하지만 그 의심의 계기에 덜컥 연루되는 지극히 소수의 예외적인 족속들은 언제나 있는 법. 그 가운데서도 성(性) 정체성은 시대적인 화두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면 무엇보다도 내가 어떤 성의 소유자인지를 알아야 한다. 나의 성이 무엇인지를 제일 먼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과정이 생략되면 누구든 행복해질 수 없다는 전언.
CA332. 이연우, 〈24, 24〉(2002)
그들의 이사(移徙)는 지리멸렬하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정서 자체가 지리멸렬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사는 신속하고 깨끗하게, 해가 넘어가기 전에 모두 끝내야 한다. 그것이 이삿짐센터의 존재 이유다. 영화도 어느 만큼은 이사 같아야 하지 않을까.
CA333. 장준환, 〈2001 이매진〉(1994)
단편영화.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 그의 정체성은 바로 그 ‘누구’가 된다. 자신의 정체성은 다른 누가 규정해 주는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규정하는 것인가. 문제는 어떻게든 규정한, 또는 규정된 정체성이 객관적으로 인정이 되느냐 아니냐의 여부다. 그 여부를 따라 그가 사회 속에 굳건히 발을 딛고 살아갈 수 있느냐의 여부가 결정된다. 하지만 스스로 규정하지 않는 정체성에 만족할 수 있는 인간이 과연 있을까. 요컨대 그가 자신을 존 레넌의 환생이라고 믿는다면 그 순간부터 그는 존 레넌이다. 누가 뭐래도 그렇다. 그건 그가 되고 싶은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막을 권리는 아무한테도 없다. 그런데도 세상은 이렇게 규정한, 또는 규정된 정체성을, 그리고 이러한 정체성 규정하기를 인정하지 않는다.
CA334. 조의석, 〈일단 뛰어〉(2002)
양아치 이야기를 되도록 양아치스럽지 않은 정서와 이미지로 그려내려는 노력. 송승헌의 이미지가 결정적으로 양아치에 걸맞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캐릭터와 그 본연의 이미지가 일치하지 않는 배우를 기용하는 문제적 풍토의 불가해한 존속 현상.
CA335. 오시마 나기사, 〈일본의 밤과 안개〉(1960)
논쟁 자체가 격렬한 것이 아니라, 논점을 회피하지 않고 있어서 격렬하게 느껴질 뿐이다. 요컨대 이 경우 미덕은 격렬함이 아니라, 용기 또는 솔직함이다. 문제는 이 격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논쟁거리의 어느 것도 해결될 수 없다는 점.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논쟁보다는 협력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학생운동의 전술적 과오에 대한 논쟁. 그러한 논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자체가 학생운동의 한계에 대한 반증이다. 학생운동에도 불구하고, 그 운동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 실패에 대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줄기차게 전락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