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68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68

by 김정수

CA336. 신상옥, 〈자매의 화원〉(1958)

전후(戰後)의 정서가 아직도 남아 있는 탓일까. 자매는 계속 운다. 툭하면 눈물을 보인다. 따라서 내러티브가 앞으로 잘 나아가지 못한다. 돈과 결혼의 문제가 사회적 맥락에서 좀 더 핍진하게 다루어지지 못한 것은 유감. 모든 것이 사랑으로 귀결되고, 마침내 해피엔딩을 맞이한다는 설정에서는 여전히 그 시대 우리나라 영화의 특징적인 나이브함이 엿보인다. 나긋나긋하게 대사를 치는 방식은 50년대 한국 영화의 공통된 특징인 듯. 일본 영화와 우리 영화 사이의 보이지 않는 영향 관계.


CA337. 이봉래, 〈잘못 보셨다구〉(1969)

여자들이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벗어난 듯 활개 치고 다니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 각기 여러 겹의 불륜을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스스로의 독립을 위한, 또는 그 독립의 표명을 위한 것이라는 점. 하지만 결론은 그 여인들 모두가 한 남편의 정숙한 아내의 자리에 돌아와 선다는 설정. 여전한 기존의 틀에 대한 답습.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코미디의 정서로 다루는 태도는 사태를 심각하게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구실을 한다. 한데도 이것이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는 끝까지 모호한 느낌이다.


CA338. 사이먼 웨스트, 〈장군의 딸〉(1999)

성폭행을 당한 딸한테 그 일을 잊으라고 요구하는 아버지. 딸의 영혼과 자신의 지위를 맞바꾼 아버지의 죄. 아버지는 딸의 영혼을 잃고, 기어코 딸의 목숨마저 잃는다. 이 단 한 번의 외면이 딸의 가슴에 남긴 상처는 딸이 입은 윤간의 끔찍한 상처를 손쉽게 압도해 버린다. 인간한테 진정 소중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소름 끼치는 극명한 주장―.


CA339. 이두용, 〈장남〉(1984)

영화 속 7, 80년대 풍경은 왜 낯설게 보일까. 아니,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7, 80년대에 만든 영화 속 7, 80년대 풍경, 그러니까 그 동시대의 풍경은 왜 낯설게 느껴질까, 하고 물어야 한다. 그에 견주면 오히려 5, 60년대 풍경이 더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한 집에 형제자매가 많던 시절의 이야기.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로 접어든 사회의 여러 가지 비인간적인 부작용. 장남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형제자매 모두가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 마지막 순간 화면에 그들이 지으려던 한옥의 앙상한 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숲을 배경으로 서 있는 광경은 그들의 미래가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는 암시일까. 아니면, 마지막 희망의 보루만은 그래도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일까.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 전통 가족구조는 그렇게 황혼을 맞이하고 있었더라는 서글픈 전언. 뒷날 레트로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CA340. 마리사 시스따츠, 〈제비꽃 향기〉(2000)

제시카한테는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다 있다. 하지만 뜯어보면 아빠는 엄마가 재혼한 남자고, 오빠는 그 남자의 아들이다. 요컨대 이 남매는 이복남매 사이인 셈이다. 제시카가 반항적인 여자아이가 된 것은 이상하지 않다. 오빠가 이 이복 여동생을 미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비 오는 날 수채화〉(1990, 곽재용)에서처럼 이복남매가 서로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에 익숙한 관객들은 고개를 갸우뚱할는지도 모르나, 결국 이 싫어하는 감정이 발단이 되어 비극이 시작된다. 제시카는 도벽이 있고, 자기 감정을 억제할 줄 모른다. 그녀는 아무한테서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다. 그녀는 사랑 결핍증 환자다. 아니, 그런 환자가 되어간다. 그래서 늘 말썽의 한가운데 서 있다. 그런 그녀가 친구네 집에서 친구 엄마의 돈을 훔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결국 그녀는 다툼 끝에 친구마저 우발적으로 죽게 만든다. 그녀가 친구 집에 잠입하여 잠시 친구 엄마한테서 그 친구의 취급을 받는 마지막 장면. 그녀는 처음으로 카메라 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싱긋이 미소 짓는다. 그 미소, 섬뜩하다. ‘문제아’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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